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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29. 2023

난 왜 저 인간이 눈에 거슬릴까

내 마음에 없는 것들은 내게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한다


살다 보면, 유독 눈에 밟히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잘 나서 눈에 밟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가진 남다른 스킬을 모조리 빼앗고 싶을 만큼 부러우면서도 어느샌가 그들을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잘난 사람들의 말투, 행동, 습관 등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따라 하며 현재의 내 모습이 형성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난 잘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스펀지처럼 그들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하는 습성이 있다. 


반면에 못난 사람들도 잘난 사람들 못지않게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엔 그들을 싸잡아 뒤에서 손가락질하곤 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요목조목 따져가며 훈계를 두기 바빴다. 그럴수록 그들에 비해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나 자신을 추켜세우기 바빴다.


그들이 곧 나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는 건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

한심하고 어리석은 짓을 자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그들과 같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던 도중에 내가 손가락질하는 바로 그 모습이 오히려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독 내 눈에 밟히는 걸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은근히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이거나, 내가 쉽게 인지할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혹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현재 나의 모습 중 일부분인 것도 있었다.


그 이후로 아마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건 동시에 나 자신을 깎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들을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말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책에 실려있는 유명한 문장이기도 하고, 잊을 만하면 여기저기서 종종 마주치는 명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문장의 의미가 내게 깊이 와닿기 시작했다.


그때 아마 깨달았던 것 같다.

'내 마음에 없는 건, 내게 아무런 자극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물욕이 하나도 없는 내 앞에서 명품옷을 자랑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하지만 내 앞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람이 눈에 보이면 난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한때는 게임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고, 여전히 지금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시간의 한계에 부딪혀 우선순위를 따지다 보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내 앞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나봤자 난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독립하고 디지털노마드로서 살아가는 사람을 직접 보게 된다면 난 그 사람을 미친 듯이 부러워할 것이다. 회사에 답이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뒤로부터 그런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심한 사람을 보면 아무런 생각이 없다. 내가 평소에 소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와도 별다른 자극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이 짧거나, 무능력한 사람을 보면 가끔 화가 날 정도로 내게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난 정말 무능력한 사람이 되기 싫은 마음이 누구보다도 강하게 내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내가 아무리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반기지 않더라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에 대해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 생각은 자유롭게 하더라도 판단만큼은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는 않는다는 것을 매번 느끼며 반성하곤 한다.


그렇게 내가 남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 판단하는 기준이 곧 나의 내면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모습에서 혹시 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건 아닌지 더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면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그저 따라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못나 보이는 사람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상대방의 모습들이 곧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다.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모습이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험상, 유독 눈에 밟히는 상대방의 모습들을 가만히 사유해 보면 분명히 내 마음에도 그런 비슷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그러다 보니 난 더욱더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다면, 아주 손쉽게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밟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을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의 모습과 대조해 보고 교집합 되는 부분을 캐치해서 자기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춘다면 아마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내 마음에 없던 것들은 내게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한다'


위의 문장을 마음에 담아 삶 속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이전에는 눈에 밟히기만 했던 모든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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