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각자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내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와 멀어지게 된 건,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나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그 친구를 비롯한 그 어떤 사람이라도, 내 앞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면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내가 판단할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사상과 이상을 비현실적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이 온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주장했다. 난 평소에 내 생각들이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다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 친구 덕분에 '현실적인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사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한동안은 괴로웠다. 가장 자주 보는 친한 친구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속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그의 말을 나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수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서를 하며 세상을 보는 제3의 눈이 열리고,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 그 기적 같은 일이 단지 착각 또는 망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난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았다.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 동안 고민해 본 결과, 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다'와 같은 말은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모두 각자만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현실은 저마다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단 하나도 같은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들 그럴 거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속상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현실과 나의 현실은 완벽하게 떨어진 평행차선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똑같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무의식적으로는 내가 보통 사람들의 범주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날더러 비현실적이다라고 손가락질 할 때마다 속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의 현실은 다르다', '네겐 비현실적이진 몰라도 내게 있어선 지극히 현실적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전혀 속상할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생각의 차이일 뿐이었다.
만약 진짜 현실이라는 게 있다면,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무엇이 진정한 현실인지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흐르지 않는 시간을 흘러간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3차원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가 내게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장 손길이 닿을 만큼 내 눈앞에 있는 사람조차도 철저히 구분되어 있는 각자만의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니까.
외계인은 지구 밖에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