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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20. 2023

상대방이 잘해주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깨달은 진실


다른 사람이 내게 잘해주면 고마운 마음이 일어난다. 보통의 사람은 그런 고마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상대방에게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어쩔 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대우를 받으면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만 같고, 상대방이 나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대단한 사람 같이 보이면서 동시에 내가 불친절한 사람 같이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가 내게 친절을 베푼다고 해서 너무 그렇게 보답하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의 끝에 있는 것

세상에서 내게 가장 잘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우리 할머니다. 할머니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키워 주고, 믿어 주고, 사랑을 주신다. 할머니는 그만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대해 주시는 분인 만큼, 나도 그에 맞게 어떤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을 항상 어깨에 지니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내가 안고 있는 마음의 무게만큼 부담을 갖고 살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이유는 할머니집에 갈 때마다 '이젠 예전처럼 밥을 먹지 못하니 조금만 달라'라고 아무리 호소를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할머니가 내게 주는 무한한 사랑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손주를 더 많이 먹이고 싶은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그러는 것은 알고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불편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던 게 사실이다.


나의 확실한 의사를 재차 거듭하여 여러 번 표현을 해도 할머니는 할머니의 생각만을 강조하시기에 바빴다. 할머니가 그러는 이유는 나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할머니 나름의 이기적인 마음에 의해서도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고집하시는 할머니는 내 의사표현이 철저하게 무시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내가 하는 말들을 듣지 않으셨다.(하지만 그런 고집 때문에 할머니는 집안의 기둥이 될 수 있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상대방이 그에 맞게 반응해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분이셨다. 아무리 필요 없다고 해도 주려고 하시는 분이었고,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믿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거기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할머니가 해주는 만큼에 대한 보답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이전보다는 약해졌다. 쉽게 말해서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 이유는 할머니가 나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의 끝에는 결국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은혜를 제대로 갚는 법

내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상대방이 내게 베푸는 호의가 순수하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본인의 감정을 위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경우는 상대방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줌으로써 이미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의도가 파악이 된다면 그에 맞게 부담감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상대방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생명체다. 그러니 내게 잘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필요 이상으로 가질 필요는 없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이기적인 존재로써 자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들에게서 자기만의 생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본받고, 나도 나만의 생각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은혜를 제대로 갚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 할머니도 내가 할머니에게 그동안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한답시고 내 일을 소홀히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준수하게 잘 살아가는 것을 더 간절히 바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물론 최고는 둘 다 챙기는 것이지만.




* 본 글은 절대로 저의 할머니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며,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저는 그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임을 일러둡니다. 단지 인간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할머니는 사이가 매우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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