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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곧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바람도 혼자서는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다

by 달보

바람


돌이켜 보면 인생 자체가 바람처럼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거의 모든 요소들은 나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소한 일도, 즐거운 일도, 심각한 일도 다가오는 순간 느낄 새도 없이 조용하게 내게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마치 없던 일이 기억의 조작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인 것마냥 모든 일이 착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착각이라고 하기엔 온몸의 감각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뭔가가 항상 남아 있었다. 나를 관통하여 흘러가는 모든 일들이 그렇게 바람처럼 느껴졌다.


인생은 각각 하나의 일들이 모여서 이루어졌다가 때가 되면 흩어져 사라지는 모래구슬 같은 것.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은 그저 하나의 작은 모래 알갱이에 불과한 것.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에 몰입하여 남들이 감히 우러러볼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업적을 세우는 영웅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저 익숙한 곳을 매일 지루하게 거닐며 길고양이와 날아다니는 참새들과 조용하게 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삶이다.


휘몰아치는 바람도 누군가에겐 재앙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평생 박혀 있던 가시를 뽑아주는 은인과도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바람이라는 것을 감히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다. 바람은 자신이 닿는 것마다 그 정체성이 달라지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힘이 센 것이 바로 바람이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바람조차도 자신이 닿는 그 무언가가 없다면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바람의 속성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곧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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