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해지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난 정말 감당하기 힘든 상황 또는 커다란 일 앞에 놓이게 되면,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극도로 차분해지는 이상한 재주가 있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일 앞에서는 항상 조급하게 굴게 된다. 조급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의 집착을 버리기가 힘들다. 겉으로는 얌전하고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를 두르고 있지만, 속으로는 혼자 앞서 가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갖춘 것에 비해 과한 욕심을 부려서일까.
난 스스로 얌전한 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의외로 조급하고 결정을 성급하게 내리는 경향이 있어서 후회가 될 만한 일들을 꽤 많이 벌리는 편이다. 다행히 애초에 인생을 뒤흔들 만한 것들까지 발을 들이는 편은 아니라서 아직 큰 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조급하고 성급하게 구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언젠가는 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감에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편이다.
조급한 마음은 결과를 빨리 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혹은 상황 자체가 두렵고 달갑지 않기 때문에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러는 걸지도 모른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부족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급함으로 표출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수많은 잡생각과 망상 또는 착각들에게 지배당하게 된다.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항상 후회할 만한 선택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큰 일을 마주하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누가 돌아가시거나, 큰 싸움이 벌어졌다거나, 부모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할 때는 순간적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솟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면 난 정말 누가 봐도 감정 자체가 없는 사람처럼, 마치 기계같이 냉정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욕은 좀 먹더라도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닌 것처럼 대응을 하게 되면 항상 뒤가 깔끔했다.
내가 그렇게 큰 일을 겪을 때마다 차분해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금방 내려놓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황 자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쉽게 내려놓는 스타일이다. 내려놓게 되면 오히려 상황 자체만 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상황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같은 것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난 이렇게 조급하게 굴기도 하고, 차분해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매번 조급하게 구는 것은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하게 굴게 되면 결과가 대부분 좋지 않았고 그만큼 후회로 남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일을 앞에 두고 차분해지는 것은 계속 유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차분해질 때만 눈에 들어오는 객관적인 지표들은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그만큼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욕심이 어디에서 오는지 파악하고, 그 욕망을 잘 다루기만 한다면 왠지 조급하게 굴던 습관도 서서히 사그라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