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뿐이다
책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나서, 언젠가 서재에 담아두기만 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갑자기 읽고 싶어 져서 책을 펼쳤다. 몇 페이지 읽었을까,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걸려서 잠시 멈춘 채, '괜찮은 사람'에 대한 사유를 해봤다.
여기서 '괜찮은 사람'이란 수용소 내에서 그나마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고, 선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예상된다. 하지만 폭력을 일삼고, 양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도덕성은 원래 있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나쁘기만 한 걸까.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괜찮은 사람과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들로 구분지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의식이 있기 이전에 살기 위한 본능이 탑재되어 있는 존재다. 누구는 생존하는 방식이 스스로 양심을 지키며 자기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구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살아남는 신념을 고수하는 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한 모든 행위는 옳다, 그르다를 함부로 나눌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수용소를 나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수용소를 나오고 나니 갑자기 돌변해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치는 위험한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상황에 맞게 변하는 동물이다. 오늘의 인간이 내일의 인간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법은 없다.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행동이 뒤따르는 게 아니라, 그저 매 순간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의외로 단순한 존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