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많이 해도 소용없는 이유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가까이 두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렇다고 독서만 하는 것은 약간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읽기만 하는 것은 일종의 '미루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만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책을 읽고 나서 사색하거나 글을 쓰는 등의 활동을 곁들이는 것이 한 권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훨씬 더 깊어진다.
난 글쓰기를 하고 나서부터 독서 권수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게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고 하나의 기록으로써 선명하게 남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이해한들 그건 애매모호한 상태로 마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일 뿐, 확실히 그게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때 글쓰기를 통해 마음에 담긴 것을 밖으로 꺼내보면,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때 책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이 내 안에 들어왔다가 밖으로 다시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 성장은 그 간극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독서가 좋은 건 글쓰기를 할 때 더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이 높아지고 통찰력이 생긴다. 어휘력이 높아지면 의사표현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비교적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조금 더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쓸 수 있게 된다. 통찰력이 생기면 모든 현상 이면에 감춰진 본질적인 부분들이 눈에 들어와 쓸 거리가 많아지고 보다 깊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를 한 세트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을 불 피울 때 사용하는 땔감은 언어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좁으면 생각을 오래 해도 그다지 신박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거나 매번 비슷한 생각만 들게 될 것이다. 반면에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넓을수록 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의 조합을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낸다. 그만큼 신선하고 다양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진다.
독서는 넓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환경설정을 해준다. 글쓰기는 인생살이와 독서를 통해 내 안에 담긴 것들을 꺼내보는 과정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게 바로 독서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독서와 글쓰기 또는 다양한 실제적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등의 것들을 일찍 정립할수록 만족스러운 삶이 보장된다. 중심이 바로 서 있는 사람은 그 아우라가 독보적이다.
사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독서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게 웃픈 현실이다. 그러나 그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AI처럼 책 속에 들어있는 모든 데이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하늘 아래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책을 읽을 거라면 독서 이상의 추가활동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지불한 책값 이상의 이득을 취하고 싶다면 말이다.
읽은 것의 가치를 높이는 활동은 꼭 글쓰기만 있는 게 아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수차례 재독해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씹어먹을 수도 있고 필사한 내용을 토대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책의 내용을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지 주의할 점은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편한 독서만 하면서 뭔가 해나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돈 버는 자랑이 아무 소용없듯이 책 많이 읽는 자랑도 해서 좋을 게 없다. 부질없는 다독보다는 제대로 된 읽기와 의미 있는 실천만이 독서에 들였던 수많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