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조카들이 부러웠던 이유
결혼하고 만나게 된 처형과 처제의 조카들은 책을 읽는다. 몇 년 뒤면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인데 벌써부터 스스로 독서를 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내가 그 나이 때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빠서 책을 읽어보겠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카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런 조카들에게 아내는 전자책 앱인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여 공유시켜 주었다. 밀리를 받은 조카들은 바로 이 책 저책을 서재에 담기 바빴다. 아내가 귀엽다며 조카들이 담아놓은 책들을 내게 보여줬다. 초등학생이 읽을 법한 책도 담겨 있었고 나도 읽어보고 싶은 책도 몇 권씩 담겨 있어서 귀여워 보였다.
그때 갑자기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믿기 어려웠지만 그 감정은 거의 질투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가 설마 조카들에게 질투를 하는 건가'싶어서 마음을 곰곰이 살펴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커다란 질투심이 나를 관통하여 지나간 게 맞았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 책을 읽지 않은 건 주변환경 영향도 있지만, 책보다는 친구들과 놀고 게임하는 걸 더 좋아했다. 독서를 하지 않은 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책 읽지 말라고 강요받은 적도 없고 부모님은 오히려 책 좀 보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부끄럽지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스스로 책 읽는 조카들에게 질투심을 느꼈던 게 확실한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질투를 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봤다. 비싼 차를 몰고 크고 넓은 집에 사는 부자들? 아니었다. 내 눈에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오히려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단순히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만 한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난 '깊이'가 있는 사람을 닮고 싶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싶었다. 깊이 있다는 막연한 표현이 나올 만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질투가 날 정도로 닮고 싶었다.
그런 내 눈에는 조카들이 벌써부터 스스로 독서를 하는 모습에서 남다른 깊이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였나 보다. 그래서 질투를 했나 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한참 어린 조카들에게 질투심을 느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긴 하다.
하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속이 후련하다.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부끄러운 감정도 솔직하게 대면할 줄 아는 내가 좋고, 그런 기분을 당당하게 글로 풀어내는 것만 해도 전보다 한층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받은 건지 스스로 관심을 가진 건지는 몰라도 책 읽는 조카들이 정말 대견하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깊은 사람으로 건강하고 지혜롭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만큼 나도 조카들을 도와줄 수 있는
큰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