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사랑은 '나를 잊게 만들어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해보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내 기분이나 감정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득과 손실을 따지지 않았다. 그 사람을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하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토록 두껍게 겹쳐왔던 가면들은 온데간데없이 그 사람 앞에서 만큼은 온전한 내 전부를 보여주고 싶어 진다.
비단 사람 앞에서 뿐만이 아니다. 사랑은 너와 나의 간극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오가는 모든 것에 존재한다. 가령 나 같은 경우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건강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도 줄여가며 친구도 만나지 않고 할 수 있게끔 어떡해서든 시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그 내막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잘하고 싶은 욕심, 해내고 싶은 간절함, 일로써 성공하고 싶은 야망 등이 섞여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일 자체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이다.
사랑은 곧 몰입이며,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감히 '살아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여기'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생각 속에 갇혀 있는 것뿐이다. 사람이 저질러놓고 후회하는 건, 본인의 진심이 아니라 잠깐 나를 훑고 지나간 네 편도 내 편도 아닌 생각의 술수에 휘말린 나머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본다거나,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때만큼은 그 어떤 잡념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그땐 그저 바라보고, 움직일 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는 건 갑자기 세상이 밝아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찬란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을 시작하고 보니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한 나머지 그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돌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그런 순수한 상태에서 보이는 것들은 자세히 관찰하며 마음에 담아놓는 게 좋다. 그런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는 데 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으면, 한창 사랑에 빠져 있을 땐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던 생각들이 다시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생각이 많아지면 눈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 때문에 사랑이 식으면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온갖 착각과 망상에 시달려 코 앞에 있는 것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고서는 사람이 떠나고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를 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가 없다면, 감정이 식었을 때 벌어지는 뒷감당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사랑을 정의하는 나름의 철학을 세우지 않으면 사랑을 시작해봤자 후회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떤 자극적인 감정에 빠진 게 아니라, 현재라는 순간에 고스란히 머물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사랑이란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