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브런치를 시작하다
작가소개란에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무런 기대 없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더니,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했다. 블로그 링크 하나 달랑 걸었을 뿐인데 그동안 블로그에 써 놨던 에세이들이 아주 나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브런치에 글을 쓰진 않았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어서 작가신청을 했다기보다는 블로그 활동에 지친 나머지 얼떨결에 신청해 본 것이었다. 달리 말해 브런치에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그 당시에 난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에 도전하고 있었다. 도서 인플루언서가 된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블로그 영향력이 올라가는 만큼 다양한 기회가 들어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블로그가 질려가는 와중에도 아예 내려놓지 않았던 건 도서 인플루언서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플루언서 승인을 받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책과 관련된 글을 몇 달간 올렸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했다. 더욱더 활발한 소통과 내가 놓치고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았다. 이미 몇 번 떨어졌음에도 계속 도전하고 있었지만, 브런치 작가가 된 시점엔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이미 인플루언서가 된 사람들은 블로그를 어떻게 꾸리고 있나 찾아봤다. 나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서 둘러본 것인데 오히려 상위권에 있는 블로그일수록 사람들의 클릭을 부르는 자극적인 요소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걸 발견하고서는 현타가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언서 딱지만 달고 나면 높은 조회수를 부르는 글을 올리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는 모양이었다. 차마 그들을 나쁘게 볼 수도 없었던 것이 뭔가 남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책 관련 포스팅은 기본적인 조회수가 높지 않다.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발행하는 컨텐츠가 조회수가 미미하다는 건 약간 과장하면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왠지 나라도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르고 싶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는 진정성이었다. 아무리 폭발적으로 블로그를 키우는 지름길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윈윈하는 걸 공유하고 싶지, 별 도움도 되지 않고 나부터 시간 아깝다고 생각되는 컨텐츠를 올리는 거라면 하기 싫었다. 마침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인플루언서 신청도 퇴짜를 맞았고, 블로그에 대한 애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던 나는 마지못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지금의 나를 보면 처음부터 브런치와 글쓰기에 열정적이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이 글에 적힌 대로다. 난 애초에 글을 쓰던 사람도 아니었고, 얼떨결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음에도 수개월동안 방치할 만큼 브런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블로그에 치이다 보니 떠밀리듯 시작한 게 브런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독서만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누구는 작가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되는 브런치라는 공간에 매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발행하고 있다. 읽기만 하던 내가 제대로 된 쓰기를 시작한 덕분에 매일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며 흡족스럽게 살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는 브런치에 닿게 되는 하나의 서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결론이다. 글쓰기에 재미가 붙을 때만 해도 돌고 돌아 브런치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찌 보면 사람의 길은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한들 마주할 기회는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상상했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