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썼다. 새벽기상을 기록하면서 사람들에게 소소한 응원을 받기에 가장 적절한 플랫폼은 네이버 블로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예상했던 것만큼 트래픽도 활발하고, 평범한 일기 같은 글에도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내 글을 읽고 동기부여를 받아 새벽기상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걸 볼 때면 덩달아 내가 더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블로그에 새벽기상 일지를 꾸준히 기록하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게 훨씬 수월했다.
나중엔 평소 읽는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난 독서를 오래 한 것 치고는 책과 관련된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인상 깊은 내용이 있으면 필사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읽은 책에 대한 감상평을 글로 써 보니 독서가 더 재밌어졌다. 진작에 글을 써 보지 않은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 독후감을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고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새벽을 활용하고 회사에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독서하니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삶에 글이 없던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더니, 어느덧 평소에 하는 생각들을 풀어내는 에세이까지 쓰기 시작했다. 난 원래 혼자 사색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마음속에 맴돌기만 하던 것들을 글로 써 보니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은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서 신기했다. 에세이를 블로그에 올리면 반응도 괜찮았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위로가 된다', '나도 글쓰기를 가볍게 시작해보려 한다'와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그렇게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붙고 점점 더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블로그를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다. 유튜브와 구글 검색을 통하여 방법을 찾아보니 이웃 맺기, 답방 가기, 1일1포스팅, 네이버 인플루언서 도전하기 등이 있었다. 그중에 할 수 있는 건 다 따라 했다. 비슷한 주제의 블로그와 이웃을 맺고, 댓글이 달리면 답방을 가고, 틈 나는 대로 또 다른 이웃맺기를 반복했다. 1일1포스팅은 기본이었고 하루에 2개씩 글을 올린 적도 많았다. 확실히 열심히 활동하는 만큼 블로그 방문자와 조회 수는 꾸준히 늘어갔다. 하지만 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반응이 확 줄어들었다.
처음엔 시간을 투자할수록 블로그가 커 가는 맛이 있어 할 만했는데, 어느덧 이웃 수가 2천 명이 넘어갈 때쯤부터는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웃관리 차원에서 댓글을 달아준 이웃 블로그를 10곳 정도만 방문해도 30분은 우습게 지나가는데, 이웃이 많아지니 하루에 댓글이 50개도 넘게 달렸다. 글 쓸 시간도 빠듯한데 블로그를 키운답시고 이웃관리에 들어가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나름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분들과 이웃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관심 있게 읽을 만한 글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 블로그도 들어와 달라'는 목적으로 방문하기 때문에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와 같은 성의 없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좋게 말해서 이웃관리였지, 사실상 의미 없는 소통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네이버 블로그 활동을 지속하는 게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작 내가 네이버 블로그 자체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블로그에 많이 올라오는 맛집, 제품리뷰, 여행, 드라마, 영화 그리고 각종 이슈와 관련된 글들은 애초에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난 독후감을 주력으로 포스팅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런 나조차도 책리뷰 같은 걸 찾아 읽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읽지 않는 종류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처음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밌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글에 애정이 붙다 보니 오직 나만 쓸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독후감은 뭔가 남의 생각을 빌려다 글을 쓰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한 편씩 올리는 독후감보다는 가끔 쓰는 에세이가 더 좋았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자니 뭔가 아깝기도 하고 분위기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에세이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만 쓰곤 했다.
그러나 하루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독후감까지 써내는 생활도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몸은 적응했지만 마음에서부터 계속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독서를 빨리 하는 건 결코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책을 빨리 읽으려는 마음에 쫓기다 보면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글자를 훑으면서 마치 벼락치기 공부를 하듯 핵심내용만 찾게 된다. 속독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난 아니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읽고 쓰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독후감보다는 에세이를 제대로 써 보자는 마음에 에세이를 올릴 만한 좋은 곳이 어디 없나 찾아봤더니, 자연스럽게 브런치라는 곳에 닿게 되었다.
알고 보니 브런치는 글쓰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으로 이미 유명했다. 다만 여느 블로그처럼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비공개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글을 발행하려면 작가신청을 해서 심사를 받고 합격을 해야만 했다. 이미 책을 출간한 사람이라면 브런치 작가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심사 때 보여줄 만한 글이 필요했다. 마침 난 블로그에 써 놓은 글들이 있어서 블로그 주소를 링크 걸고 별 다른 기대 없이 작가신청을 했었다. 그렇게 신청을 해놓고도 좋은 결과에 대해 희망을 품기보다는, 여전히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하는 게 좋을지를 계속 고민했었다.
그 후 며칠 뒤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 생각지도 못하게 브런치 작가심사를 한 번에 합격한 것이다. 그러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브런치에 글을 쓴 건 아니었다. 난 여전히 도서 인플루언서에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