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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앞에선 사소한 문제따위

작은 문제는 중요한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

by 달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던 나는 기타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아는 형님의 동생분이 취미로 기타를 치는데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해 형님의 동생분을 소개 받아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손가락이 많이 아팠다. 기타줄을 쌔게 눌러야 해서 손가락에 힘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다. 대충 누르면 소리가 이상하게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은 연습하고 나면 손가락 끝이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그럼에도 능숙하게 기타를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시간날 때마다 연습하려고 노력했다.


근데 기타를 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손톱이었다. 내 손톱모양은 남자 손톱 같지 않게 둥근 아치형으로 생겼는데, 손가락 마디 너머로 길쭉하게 뻗어 있다. 기타 줄을 잡을 때는 손가락 마디가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눌러야 했는데, 길죽하고 둥글게 튀어나온 손톱 때문에 아무리 힘을 줘도 줄이 제대로 눌리지가 않았다. 손톱을 바짝 깎지 않으면 기타줄을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난 손톱도 빨리 자라는 편이라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기타연습을 하려면 손톱부터 깎고 시작해야 했다. 근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귀찮아졌다. 기타연습을 시작 하려다가도 손톱이 깎기 귀찮아서 기타를 꺼내다가 도로 집어넣는 일이 점점 늘어갔다. 한 번은 손톱을 깎지 않고 손 끝에 힘을 좀 더 쌔게 줘가며 연습을 해보기도 했는데, 손가락만 벌겋게 달아오르고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아서 금세 다시 기타를 집어넣고 말았다. 어느덧 기타가방 위엔 먼지가 쌓여만 갔고, 결국 나중엔 기타를 당근에 팔아버렸다.




요즘은 글만 쓰며 살아간다. 근데 모양만 보기 좋은 내 손톱이 글쓰기를 할 때도 말썽을 피운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를 때 닿는 부위가 기타줄을 잡을 때 닿는 부분과 똑같기 때문에, 타이핑을 할 때도 내 특이한 손톱 모양 때문에 꽤나 애를 먹는다. 손톱이 조금만 길어도 잘 눌리지 않거나, 오타가 많이 생겨서 물 흐르듯 타자를 치기가 어렵다.


다만 여기서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면, 글쓰기를 하기 위해 손톱을 깎는 건 전혀 귀찮지가 않다는 점이다. 번거롭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글을 쓰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루틴의 일부인 것처럼 손톱을 깎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약간 당황스럽다. 손톱 깎는 게 귀찮아서 기타를 중도에 포기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항상 들고 다니는 노트북 가방엔 노트북과 충전기, 마우스, 블루투스 이어폰에 이어 쌩뚱맞게도 손톱깎기가 항상 같이 들어있다. 날을 정해놓고 깎는 건 아닌데, 타이핑을 치다가 손톱이 걸리적 거리는 느낌이 들면 바로 손톱깎기를 꺼내 손톱부터 깎는다. 이전에 기타칠 때 깎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제 와서 보니, 기타는 손톱을 깎으면서까지 해야 할 만큼의 애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근데 글쓰기를 할 때는 손톱을 깎는 게 전혀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만큼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애정이 드러나는 것 같다.


손톱을 깎는 게 귀찮아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쓸 수 있는 글은 당장에 바로 쓰지 않으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찰나의 순간처럼 사라지고 없는데, 겨우 손톱 하나 깍기 귀찮다는 이유로 귀한 글감을 놓친다는 건 스스로 용납하기 힘들 것 같다. 아마 지금보다 더 빨리 손톱이 자라더라도, 어떡해서든 부지런히 손톱을 깎아가며 글을 썼을 것이다. 확실히 좋아하는 일이 생기니, 그전엔 상당히 번거로운 문제였던 게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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