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잘 보면 좋은 건 줄 알았다

내가 가장 잘 보여야 될 사람은 나 자신이다

by 달보


옛날엔 남 눈치를 볼 일이 많았다. 남들이 원하는 걸 미리 파악해서 센스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고, 상대방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내 그에 맞게 행동함으로써 좋은 이미지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로 부딪힐 일도 없었다. 고로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어느 정도 눈치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 볼수록 확실히 배려하는 기술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깊은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제껏 눈치를 볼 때마다 목격했던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내가 실제로 그들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게 아니라, 그저 본인을 신경 써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마음은 신경 쓴다고 해서 결코 알 수 있는 게 아니건만,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수록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낸다'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는 사실이 그저 한없이 부끄러웠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고작 눈치 하나 살핀다고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면 쓸수록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쓸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너무 피곤하게 살아왔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나 또한 시간과 에너지가 제한적인 한 명의 인간이기에 효율적인 에너지 분배가 필요했다.




요즘은 예전만큼 눈치를 많이 보지 않는다. 그냥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무례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 바로바로 물어보는 편이다. 혼자 고민하고 머뭇거릴 시간에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현명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이젠 알고 있다. 내 마음 하나도 잘 모르면서, 순간적인 생각으로 남들의 속마음을 알아채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에 무리이자 욕심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센스 있게 행동하는 건 확실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이미지를 고수해야 한다'는 집착이 강해지기도 한다. 그럼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굴레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남 눈치를 보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함을 넘어선다면 스스로를 보호하기는 커녕 정작 본인에게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만큼 되려 자기 자신과는 멀어질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행복의 주도권을 남에게 쥐어주는 꼴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에게는 미움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신경 끄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잘 보여야 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설령 남들이 나를 우러러본다 해도, 내가 나를 좋게 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외부가 오염되면 내면의 치유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내면이 오염되면 외부를 아무리 가꿔봤자 아무 소용없듯이.


세상에서 눈치를 가장 많이 봐야 할 단 한 명의 존재가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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