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동안 수많은 글을 쓰며 느낀 점
2023년 3월부터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업무 중 쉬는 시간에 글을 쓰고, 퇴근하면 카페로 가서 글을 쓰며 하루 한 편 이상의 에세이를 꾸준히 발행했다. 블로그에서처럼 1일 1포스팅에 대한 강박은 없었다. 단지 매일 글을 발행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글을 썼고, 약간 미흡하더라도 적당하다 싶으면 시원하게 발행하고 보는 편이었다.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잊어버리는 게 다음의 새로운 글을 쓰는 게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어느덧 브런치에서만 벌써 400번째 글의 발행을 앞두고 있다.
되도록이면 글을 많이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내게 필요한 건 오로지 많은 글을 써 보는 경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곳에 집중하거나 오래도록 꾸준히 하는 걸 잘하지 못했는데, 유독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는 글쓰기 하나만 파고들어야겠다는 집념이 생겼다. 그때부턴 고민의 방향이 한결같았다. 언제나 머릿속엔 '글쓰기'와 관련된 생각밖에 없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글감으로 보였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독서를 하면서도 쓸 거리가 생각났다. 특히 광활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안에 숨어 있던 정제되지 않은 원석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모아 다듬으면 금세 한 편의 글이 뚝딱 나오곤 했다. 인기 많은 주제, 쉽게 읽히는 글, 세간의 트렌드 등과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기록을 남기는 것에만 의의를 두고, 쓰는 데만 집중하며 살았다.
만약 글쓰기로 점철된 나의 유별난 일상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꽤나 고독해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심지어 아내의 얼굴도 보기 힘들 만큼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만 빠져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눈앞의 작은 세상을 차단한 덕분에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보다 드넓은 우주였다. 글쓰기를 통해 여태껏 눈과 마음을 통해 들어왔었던 세상 전부와 그 너머의 세계가 내 안에 들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을 딛으며 난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자세를 갖춰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꼈다. 고작 글만 썼을 뿐인데도 이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글쓰기는 꽤나 괜찮은 활동이지 않을까.
브런치에 400편의 글을 발행하는 동안 느낀 점이 있다면, 글은 별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문자그림의 조합에 불과한 글 자체는 생각보다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진짜'는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글쓴이의 상태변화와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영향력이다. 글쓴이가 아무리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지녀도 좋은 글을 쓰는 건 한계가 있다. 어차피 자기 안에 들어있는 것 이상으론 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좋은 내용을 많이 넣는 인풋활동이 필수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런 자질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글쓰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세간이 극찬하는 글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좋은 인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독자는 글을 읽을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읽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느끼는 자극과 해석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고로 글쓴이와 마찬가지로 독자도 마음 상태와 주변환경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한정적이다. 스스로를 닫아놓은 사람은 수많은 명저를 읽게 되더라도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사람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도, 깊은 감명을 받는 것도 힘들다. 글은 단지 한 사람을 비추고 담아내는 수단이자 통로일 뿐이다. 읽는 것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더 많은 독서를 하게 되고, 쓰는 것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더 많은 글을 쓰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많이 써 본 사람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 삶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이 더욱더 부각됨으로써 점점 더 깊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솟아난다. 글쓰기는 고독한 공간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한 사람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데 있어서는 가히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난 글을 많이 쓰면 쓸수록 체감되는 사건의 지평선이 점점 더 확장되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매일 꾸준히 글쓰기를 했던 만큼 하루하루 변하는 내 모습을 관찰하는 맛이 쏠쏠했다. 예컨대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보면 언제나 거슬리는 부분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족한 필력이 매번 부끄럽지만, 그런 게 눈에 밟히는 만큼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로 삼기도 한다.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는 애써 찾을 필요도 없었다.
딱히 목표를 세우고 글을 쓰진 않는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메인노출, 구독자상승, 새로운 제안 등에 대한 희망은 품고 있었지만, 딱히 갈망하진 않았다. 그런 것들은 애초에 간절히 원하기만 해서는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만 신경 쓰며 살았다.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쓰고 내일도 오늘처럼 쓸 수 있게끔 마인드를 다지며 일상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400편이 넘는 글을 발행하게 되었고, 그만큼 긍정적인 변화와 좋은 이슈가 많이 일어났다. 앞으로도 딱히 어떤 원대한 목표를 지닐 생각은 없다. 굳이 목표 없이도 하루하루 잘 써 나가고 있는데, 괜히 애먼 곳에 깃발 하나 꼽아봤자 글쓰기에 방해만 될 뿐이다. 난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글쓰기만으로도 충만한 삶,
참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