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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26. 2023

우연히 방문한 미술관에서 발견한 최고의 작품

미술관에서 꿈에 그리던 그림을 마주하다


날씨 좋은 주말, 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에 있는 대구미술관을 방문했었다. 사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혼자 미술관에 갈 일은 거의 없었는데, 아내 덕분에 종종 가게 된다. 여전히 미술작품을 구경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이해되고 공감되는 작품보다는 설명문을 읽어도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작품이 더 많다. 그럼에도 미술관 가는 게 은근히 반가운 이유는 여유를 즐기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날에 커다란 미술관 안에서 천천히 걷다 보면 미술작품과 함께 산책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더군다나 대구미술관은 차가 밀리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도심 속 한가운데 위치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 좋은 점도 있었다.


미술관에 방문할 땐, 한참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할 글을 쓰느라 바쁜 시기였다. 그땐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글만 썼었다. 근데 그 와중에 문득 아내가 미술관을 가자길래 내심 반가웠다. 마음의 환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운전하는 동안 청량한 하늘의 구름과 아름다운 산세를 구경하다 보니 미술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커다란 홀로 들어가니 마침 가이드분이 작품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사람들 틈에 껴들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설마 미술 작품인건가'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가까워지면 시야에 잘 안 들어오는 것처럼 현대미술은 내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옛날 작품들을 보면 감상할수록 빠져드는 맛이 있는데, 현대미술은 보고 있으면 뭔가 막연해지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가이드분의 설명을 조금 듣다 보니 확실히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여유와 혼돈이 적절히 뒤섞여가고 있을 때쯤 그 어떤 것보다도 내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게 나타났다. 그건 바로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니는 노부부였다. 평소 길거리에 노부부가 나란히 걸어가는 걸 보면 그렇게 보기가 좋았다. 근데 그때 봤던 노부부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말끔하게 정리된 빛나는 백발, 단정한 옷차림만 봐도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은 거리감이 압권이었다. 손을 정말 꼭 잡고 있었다. 오직 이 세상엔 자기 둘밖에 없는 것처럼 둘이서 정말 사이좋게 미술작품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구경하는 와중에 잡고 있던 손을 잠깐 놓더라도 금세 할머니가 다시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으며 옆에 바짝 달라붙어 걷곤 했다. 여느 젊은 커플처럼 팔짱도 자주 꼈다.


일부러 따라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선이 겹쳤다. 덕분에 그들의 모습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노부부와 동선이 틀어지길 바라기도 했다. 그들 때문에 미술작품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옆에 있는 아내조차도 안중에 없었다. 아내는 이미 노부부의 아우라에 빠져있는 날 보며 살짝 미소 짓고는, 내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한가로이 주변에서 혼자 미술작품을 구경했다.


아직도 눈에 선명한 그 노부부의 모습은 나의 꿈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늙어서도 저분들처럼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배우자와 오랜 세월 동안 사이좋게 지내는 게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그림이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고 글을 쓰는 건 나 좋자고 하는 것도 있지만, 아내와의 관계를 위한 것도 크다. 게으름을 극복하고, 지루함을 견디고, 여러 쾌락과 자극을 참을 수 있는 원동력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아내가 옆에 있을 때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쯤 쓰고 있던 글 때문에 그 노부부의 모습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가정을 위한답시고 일 중독에 빠져 일만 하다가 결국 큰 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시간들을 땅을 치고 후회하며 평생 해본 적도 없는 기도를 신께 간절히 올리는 그런 소설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세이와는 다르게 소설을 쓸 때는 이야기 속에 빠져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은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울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미술관을 나갈 때까지도 그 노부부와 우린 거의 동행하다시피 했다.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던 그들의 마지막 뒷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물론 그들의 속사정은 모른다.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고 그런 사이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보기 좋았을 뿐이다. 그들처럼 늙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내가 그날 그 커다란 미술관에서 봤던 수많은 작품 가운데, 단연코 최고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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