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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23. 2023

어느 날 꾼 꿈이 소설까지 쓰게 만들었다

에세이만 쓰던 내가 꿈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될 줄이야


얼마 전 꿈을 꿨다.


꿈 속에서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나이 든 아내였다. 백발이었고, 말끔한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늙어버린 아내와는 다르게 꿈 속의 난 지금 그대로의 나였다. 근데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더니, 내게 거의 뛰어오다시피 다가와 품에 안기고서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난 그녀가 왜 우는지 몰랐지만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달래주라고 손을 뻗으라는 본능보다는, 상황파악이 아직 덜 끝났으니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이성의 입김이 더 쎘다.


잠시 후, 그녀는 여전히 내 품에 몸을 파묻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가서 이제 왔냐고, 당신 먼저 떠나고 혼자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다신 어디 가지 말라고, 이젠 계속 자기 옆에 있으라며 내게 호소했다. 그녀는 내가 세상을 먼저 떠나간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백발의 할머니였지만 분명 아내가 맞았다. 그러나 그 꿈 속의 난 나이가 지긋이 든 그녀의 남편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마 이건 꿈일 거라고 눈치를 채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뼈에 사무치듯 서러운 감정은 나를 관통했고, 나를 중독시켰다. 꿈은 거기서 끝났지만, 그녀의 심정은 현실로 돌아온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꿈 속에서 만난 아내는 나 없이 몇 십년을 혼자 지낸듯 했고, 세상을 먼저 떠나간 내 빈자리를 얼마나 크게 느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아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미리 본 것만 같았다. 그 장면은 분명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미안했고, 너무 안타까웠고, 가슴이 시리도록 쓰라렸다.


 그 꿈을 꿨던 날도 난 평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 카페로 가서 글을 썼다. 그래봤자 어차피 꿈이었기에 여느 꿈들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장면, 그 감정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문득 그 꿈을 떠올렸더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꿈이 기억에 남는 것도 드문 일인데, 그 꿈 속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이리도 슬피 우는 건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보통 꿈이 아닌 듯했다. 그날 하루 그러고 말 줄 알았던 꿈의 여파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날 못살게 굴었다. 꿈에서 봤던 장면들 보다는 꿈에서 내게 안겨 울었던 나이 든 아내의 슬픈 심정이 너무도 생생히 느껴졌다.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대체 꿈과 현실의 경계는 있는 건지, 멀티버스라는 게 진짜 존재하는 게 아닌지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난 그 특별한 꿈을 현실로 실현해 보기로 했다. 그 꿈을 재료 삼아 소설을 써 보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소설이라곤 연습 삼아도 써 보지 않았던 내가 왜 하필이면 평소 쓰던 방식을 버리고 소설의 형식을 택했는 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비록 재료라곤 꿈에서 본 장면과 그때 가슴에 고스란히 새겨진 슬픈 감정이 전부였지만, 상관 없었다. 일단 써 보기로 했고, 그냥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신이시여'는 그렇게 쓰게 되었다. 귀신에 홀린듯이 썼고, 퇴고도 거의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할 순 있는지도 감히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신이시여'가 내가 최근에 썼던 글모음 중엔 가장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에세이만 쓰던 내가 이런 전개를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생은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생기는데, 글도 마찬가지고 쓰다 보니 별 걸 다 써 보게 된다. 꿈 때문에 계획도 생각도 없던 소설을 써보다니,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소설 '신이시여'를 쓰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은 배로 커졌다. 나 없이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비현실적으로나마 경험한 덕분에 '있을 때 더 잘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뻔한 진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깊게 와닿았다. 지금도 아내의 얼굴을 보면 그때 그 꿈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가 전보다 더 자세하게 보인다. 이젠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음도 여전히 불어날 여지가 남았음을 직감한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난 그 꿈 덕분에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마저 든다. 훗날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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