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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23. 2023

노부부가 운영하는 위기의 중국집을 구해낸 아내

하마터면 점심을 굶을 뻔했다


난 평소 남는 시간의 대부분을 글쓰기로 보내지만, 주말엔 되도록이면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지난 주말에도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바깥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원래는 그날 점심으로 냉면을 먹으려고 했으나, 동선이 꼬일 것 같아 중간에 목적지를 바꿨다. 그래서 전부터 아주 가끔씩 들리던 노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을 가기로 했다. 그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우린 그 집을 꼭 가야만 했기에 방향을 틀게 된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린 11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그 중국집에 도착했다. 주차장도 없어서 골목길로 들어가 알아서 주차를 하고 나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노부부가 별 욕심 없이 운영하는 가게라 그런지 요즘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저렴한 가격에 맛도 괜찮은 가게였다.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가게 안은 벌써 절반 정도가 차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올 만큼 널리 알려진 집은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들만으로도 금세 자리를 가득 메우는 집이었다.


우린 야끼우동, 쟁반짜장, 미니탕수육을 시키고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근데 뭔가 가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다. 그전부터 가게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났었는데, 알고 보니 가스경보기가 울리고 있는 소리였다. 그제야 사장님의 심각한 얼굴이 바빠서 그런 게 아니라 패닉에 빠진 표정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잠시 후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전화기를 붙잡고 어딘가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스가 갑자기 안 나와요!"

주인 할머니가 문 밖을 나가면서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손님들 기다리고, 음식준비 다 했는데 어떻게 쉬라고!"

문 밖에서 들어오는 주인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가스가 나오질 않아서 음식조리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다 고래고래 소리는 지르고 있지만, 상황이 금세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보다 먼저 앉아 있던 손님들은 가망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한두 팀 씩 가게를 나가기 시작했다. 노부부는 가게를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나가는 손님들을 붙잡을 생각도 여유도 없어 보였다.


계속 울리는 가스 경보기 소리를 듣다 보니 점점 불안해졌다. 실제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에 우리도 결국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들린 곳인데 이렇게 가는 게 아쉬웠던 가게 밖에서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멍 때리고 있었다. '그냥 처음 가기로 했던 곳을 가야 했나'싶은 생각이 들면서 후회도 살짝 했다.




그 사이 배도 많이 고파져서 근처 아무 곳이나 들르자는 말을 아내에게 하려던 찰나에 대뜸 아내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설마 가스 업체에다 전화를 하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지켜봤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여기 가스가 갑자기 안 나온다고 해서 전화드렸는데, 주인 분들이 연세가 있으셔서 제가 대신 전화 드렸어요!"

아내가 대신 가스업체에다 전화를 해준 모양이었다. 근데 이미 노부부도 전화를 하고 있던 참이어서 그런다고 해결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내는 통화를 끊지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아내 뒤를 졸졸 따라갔고, 들어가서 보니 영상통화로 전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패닉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아내가 뭐라고 하더니 할아버지와 아내는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난 그 뒤를 따랐다.


보아 하니 아내와 통화하고 있는 동네 가스 사장님인지 누군지 모를 아저씨 한 분이 영상통화로 주방을 보여주면 도와주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분은 아내의 폰을 통해 영상 속에서 주방을 잠시 쳐다보더니, 일단 가스차단기 코드부터 뽑으라고 했다. 아내는 가스차단기를 찾아서 코드를 뽑았고, 폰을 돌려 다시 주방을 보여줬다.


"저기 천장 쪽에 밸브 보이죠. 그 옆에 붙어 있는 동그란 버튼을 누른 채로 밸브를 열어봐요. 그럼 가스가 나올 겁니다."

동네 가스 사장님인지 누군지 모를 그 아저씨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아내는 영상 속 아저씨의 말을 전해주었고, 할아버지는 선반 두 칸을 훌쩍 올라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밸브를 만지기 시작했다. 난 할아버지가 혹시 손을 놓쳐서 뒤로 나자빠지실까 봐 등을 받쳐주었다. 잠시 후 영상 속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천장에 달린 밸브를 열었더니 신기하게도 가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게 가스 비상밸브였던 것 같다.


비록 오픈 시간보다 약 한 시간 정도는 늦었지만, 아내 덕분에 그 중국집은 영업을 개시할 수 있었다. 만약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날 하루 또는 주말 이틀 동안은 장사를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말이라서 사람이 갑자기 방문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동네 가스사장님인지 뭔지 모를 그분이 영상통화까지 걸면서 도와주신 게 정말 감사했다. 우리 가게는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적극적인 도움에 약간 감동까지 받았다.




아내 덕분에 우린 맛있는 탕수육과 쟁반 짜장 그리고 야끼우동까지 맛있게 먹었다(이 메뉴들 모두 다 합해서 17,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우리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우리 와이프 덕분에 식사할 수 있게 된 거라고 돌아가며 자랑도 하고 싶었다.


우리도 충분히 다른 손님들처럼 다른 식당을 찾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지를 발휘하여 노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극적으로 큰 도움을 준 아내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난 전에 없던 든든함을 느꼈다. 안 그래도 이 사람과 결혼은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 영웅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의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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