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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Dec 13. 2023

'여보, 옷장이 좀 비좁은데'라고 할 뻔했다

하마터면 잔소리만 들을 뻔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아내의 집이다. 아내는 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34평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내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땐 아내의 허락 하에 하숙생으로 빈 방에 입주할 수 있었다. 아내는 몸만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양심상 대놓고 눌어붙어먹을 수는 없어서 월세 개념으로다가 한 달에 일정금액을 이체하곤 했다.


다행히 극비리에 진행된 아내만의 테스트?를 통과한 나는 하숙생에서 남편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모은 것도 가진 것도 없이 초라하게 입주한 내겐 과분한 특진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넓고 아늑한 집에 아무 대가 없이 살게 해 준 감사한 마음은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근데 내가 하숙생 출신이라는 걸 여전히 실감 나게 해주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옷장이다.


아내가 쓰는 옷장이 10칸이라고 하면 내가 쓰는 공간은 1칸 남짓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안방의 드레스룸은 아내의 옷으로만 가득 차 있다. 물론 난 옷이 그만큼 많이 없다. 물건을 많이 가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사 갈 때면 차 한 대에 다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짐이 없었다.


덕분에 평화로웠던 1칸 남짓의 옷장은 아내가 내 옷을 사주기 시작하면서부터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옷장의 공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옷을 빡빡하게 넣으면 그만큼 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아내에게 기회를 엿보고 옷장 몇 칸을 더 내달라고 찔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옷장을 다시 열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내에게 공간을 내어달라고 찔러보기는커녕 오히려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옷가지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일단 모든 옷을 다 꺼냈다. 애매해서 비어있던 공간까지 알차게 쓸 수 있을 만큼 옷 개는 법을 달리했다. 안 입는 옷은 과감하게 버렸다. 그랬더니 옷장이 이전처럼 여유가 생겼다. 옷의 양은 전에 비해 3배 정도가 늘었는데도 말이다.


옷 개는 법을 달리해서 애매했던 공간까지 활용하기 시작한 게 효과가 꽤 컸다. 


무턱대고 아내에게 옷장 자리 좀 내달라고 했었으면 구겨진 옷들을 정리할 생각은 하지 못했거나, 아내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난 '불만을 가지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교훈을 옷장정리를 통해 혼자서 조용히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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