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다보면 간절히 얽매이기 마련이다
여기 냄비에 물이 담겨 있다. 냄비를 흔들면 찰랑거리는 물은 아마 모두가 물이라고 부를 것이다. 근데 이 냄비를 냉동실로 옮기니 얼음이 되었다. 냄비를 흔들어도 꼼짝 않는 얼음을 보고 물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후 다시 냄비를 꺼내서 이젠 가열하기 시작했다. 딱딱하던 얼음은 금세 다시 물이 되었고, 잠시 후 그 물은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증발하기 시작한다. 이젠 사람들이 그것을 물도 얼음도 아닌 수증기라고 부를 것이다.
만약 이 과정을 순식간에 반복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물일까, 얼음일까, 수증기일까. 아마 여기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물도, 얼음도, 수증기도 아니니까 말이다.
근데 세상 모든 게 이런 이치와 거의 일맥상통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나이지만, 내가 아니다'
위와 같은 말을 처음 보는 사람은 '저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다.
내 이름은 내가 아니다.
내 팔과 다리도 내가 아니다.
내 나이도 내가 아니다.
나의 직업도, 지위도, 재산도
모두 나로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들이다.
혹 나를 나라고 확실하게 확신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나타날지언정 그마저도 그때 그 순간의 나만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때문에 자기 자신을 알아갈수록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성장하거나 혹은 퇴화할 수도 있는 건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매 순간 변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책도 교육도 모두 소용없을 것이다. 인간은 뭔가를 배우고 깨우쳐야만 변하는 게 아니다. 우린 원래부터 변하고 있었고, 지금도 꾸준히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심지어 생명이 다 할지라도 말이다.
고로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은 우리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촉진제라고 볼 수 있다.
고개 들면 바로 보이는 하늘 너머의 광활한 우주는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런 우주로부터 온 우리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생각이 본인을 그렇게 정의하는 것뿐이다.
'게으름'에 대해서 조금만 더 깊이 사유해 보자.
과연 게으르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단지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거나, 세상이 미리 정한 모범답안과 상이한 자신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만들어 낸 착각은 아닐까.
알고 보면 우리 몸은 참 부지런하게도 움직이고 있다. 꼭 뭔가를 해야만 뭔가를 하는 게 아니다. 기초대사량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도 있다. 혹은 명상을 떠올려 보자. 눈 감고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얼마나 수많은 잡생각이 머릿속을 지나는지 한 번이라도 명상을 해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생각도 모두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과 생각을 멈추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토록 게으르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혼자서 몰래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팽창하는 모습의 형태로 변하고 있는 우주의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결코 그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글이 겉돌아 살짝 길어졌지만, 요는 인생의 어느 한 점에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고 원해서 목표한 점에 다다른다 한들 그 지점에 닿게 되는 순간, 이미 모든 것들은 다른 점을 향해 또다시 나아갈 것이다.
단 한순간도 제대로 머무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변화하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마저도 도가 지나치면 간절히 바라는 만큼 어딘가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 누구든지 간에 본인이 원하는 궁극적인 삶의 형태가 뭔가에 구속당하는 건 아마 아닐 것이다.
마음 깊이 원하는 바와 한참 어긋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으려면 비로소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지식이 많다 못해 흘러넘치는 시대에서 지혜를 터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밖에서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지식과는 다르게, 지혜는 스스로 발견하고 깨우쳐야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더군다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속성을 감안하면 지혜를 깨닫는 건 시작일 뿐이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지혜를 겨우내 깨달아도 그게 끝이 아니란 사실은 우리를 더 막연하게 만든다.
하지만 중도를 지키며 끊임없이 구하고자 한다면 언젠간 제 발로 찾아오는 게 바로 지혜다. 세상과 나라는 존재를 보다 넓게 그리고 좀 더 자세하게 탐구할수록 지혜는 좀 더 이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삶은 서운할 정도로 막연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