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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Dec 04. 2023

관계의 최전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가만히 있으면 반이 아니라, 반 이상도 간다


얼마 전 아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영양사 분이 새로 오셨다. 그 후로 아내는 매 점심시간마다 나오는 회사밥이 식단구성도 좋고 맛도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가 밥맛이 좋다니 괜히 내가 먹는 밥도 맛이 한층 오른 것만 같았다.


우린 점심 메뉴가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그럴듯하면 가끔 서로 사진을 주고받곤 한다. 아내는 영양사 분이 바뀌고 난 후로 점심때 보내오는 사진의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아내가 보내온 사진 속 점심메뉴를 볼 때면 내가 봐도 확실히 전과는 비교가 되어 보였다. 차로 이동하면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내의 회사로 넘어가 옆 자리에 앉아서 뺏어먹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한날, 여느 때처럼 아내는 점심시간 때 맛깔 좋아 보이는 수육사진을 보내왔다. 근데 아내가 보내온 사진을 보다 보니 수육보다는 그 옆에 가득 쌓여 있는 노오란 배추가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식당에서 일하시는 여사님이 갑자기 대뜸 먹으라며 얹어준 거라고 했다.




"여보, 식당 여사님이 내 식판에 배추를 이만큼이나 올려줬다오."

(우리 부부는 하오체, 즉 사극톤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여사님이 자기 완전 애정하나 보오?"

사진 속의 배추는 거의 식판의 반틈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겹겹이 쌓이다 못해 밖으로 넘치려 하고 있었다.


"난 참 하는 거 없이 이쁨 받는 거 같소. 배추가 달아서 아주 맛이 좋다오~"


그때 아내의 답장을 보는 순간, 문득 '하는 게 없어서 오히려 더 이쁨 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딱히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다. 혼자서도 알차게 잘 논다. 뭐 하나 눈에 들어오면 유달리 집착하는 나와는 달리 어딘가에 매달리거나 얽매이지도 않는다. 아내는 내가 살면서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에 비하면 선입견이나 편견도 별로 없는 쪽에 속했다. 그러다 보니 남을 함부로 단정 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하기를 꽤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난 생각해 봤다. 혹시 아내에게 잘해주신다는 그 여사님도 아무런 잡념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아내를 좋게 보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남을 이기려 들지도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남을 밀쳐내지도 않는 아내에게 자연스레 조금 더 마음이 끌리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정말 아내는 그 여사님을 위해서 한 게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런저런 자기들만의 사연을 핑계 삼아 관계의 최전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아내 같은 존재는 보기 드문 경우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을 돌아봤을 때, 곁에 사람을 많이 거느리고 지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 보면(나 또한 그렇다)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건지 체감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위해 이래 저래 노력해 봐도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의도치 않게 자꾸만 속상한 일이 생긴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다행히 얌전하게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도 불만을 품어대는 시대까지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말이다.


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구하거나 증명해 낼 필요는 없다. 내 눈에 뻔히 상대방이 비치고 있음에도 여전히 머릿속은 온통 자기 자신뿐인 것처럼 남 또한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내게 잘해주든 부정하든 간에 그들도 그들의 눈에 멀쩡히 비치고 있는 나 같은 존재는 사실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건 상대방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는 시도다. 평소 운동이나 공부, 다이어트 같은 건 몇 번 시도해 보다가 금세 포기하던 사람들도 인간관계라는 가두리 안에서는 지지리도 질겨지는 경향이 돋보인다.


물론 '너와 나' 혹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자, 선한 의도를 품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뜻이 좋든 아니든 간에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마찰은 뭔가를 하고자 움직일 때 일어난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어버리거나, 운이 따라주지 않아 상황이 꼬여 버리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악감정만 품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취지는 불량했으나 어쩌다 보니 상황이 웃기게 돌아가서 관계가 개선될 수도 있다.


이런 걸 보면 마음 깊이 갈망해도 뜻대로 안 되는 인간관계는 그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인생과도 참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남남일 때는 얌전히 있다가 너와 내가 되면 슬슬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는 걸까. 자기 자신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평생토록 배워왔음에도 다른 사람을 어찌해 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건 인간의 특징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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