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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Dec 07. 2023

밑 빠진 독에 돈을 들이붓는 사람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돈을 가장 현명하게 쓰는 방법은 '써야 될 것 같을 때' 쓰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갚아야 할 대출금도 많고, 매달 고정지출로 나가는 금액도 적지 않아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지인들의 선물까지 챙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조카를 보면 용돈을 주고, 명절 땐 제사비를 주고, 생일 땐 용돈을 주고, 해가 지나면 복 받으며 돈을 주고, 기념일은 또 기념일이라고 돈을 쓰면 대체 돈은 언제 모을까. 사람마다 재정적인 환경은 다르지만,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을 챙긴다면 결코 유의미한 저축은 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돈은 그럴 때 쓰려고 버는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고 모든 건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퍼주는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는 얻겠지만, 적정선을 넘어가면 자신의 안위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때그때 순간마다 해야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생각에 낯 뜨거워질 일 없어 안심은 되겠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여유롭지 못한 재정상태가 낳은 불안함과 초조함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픈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당장의 생활비 하나 해결하는 것도 빠듯한 마당에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기꺼이 돈을 쓰는 건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그런 행위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진정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심리와 당연히 해줘야 마땅하다는 관념을 이기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영향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유가 없음에도 돈을 쉽게 쓰는 건 일종의 현실회피이기도 하다. 여의치 못한 주머니 사정에 의해 누군가에게 작은 것 하나도 사줄 수 없다면 당장의 상황이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이상의 삶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아프지만 기둥에 말뚝 하나를 박는 것과도 같다. 상처는 생길지언정 그 말뚝 하나 덕분에 비로소 한 단계 위로 올라가 세상을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돈은 '이미 좋은데 더 좋은 일을 불러오기 위함'이 아니라, 살다 보면 일어나는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사용할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굳이 돈을 써가면서까지 나의 안위를 지킬 필요는 없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대개 천문학적인 돈을 쓰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돈으로 마음을 자극하는 건 생각보다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뒤 새는 돈부터 막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정작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뒤늦게 깨닫고 땅을 치며 평생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을 탓할 순 없다. 본인이 마주한 모든 상황은 과거 본인의 수많은 선택들이 자초한 일들이니까.


힘들게 고생해서 돈을 모았다면 애먼 곳에 함부로 쓰지 말고 우선 나부터 지키고 보는 것이 순서이지 않을까.

흔히 사람들이 '건강이 최고다'라고들 하는데, 건강도 어찌 보면 신체적인 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내가 나를 챙기지 않는다면, 쓸데없이 건강하기만 하다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내가 없다면 그 무엇도 없다. 어차피 한평생 나로서 살아가야 한다면, 우선 나 자신부터 지킬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는 것이 남들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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