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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Dec 17. 2023

더 이상 회사를 위해 애쓰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의 시간, 나의 노력


열심히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만큼의 의미가 있고 성과가 따르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숱한 고민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과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대학교 다닐 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주어지는 과제들이 모두 하나같이 고민하면 할수록 결과물이 보다 더 다듬어지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직장에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던 건, 열심히 하면 할수록 손해 보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칠수록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칠수록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될 때가 많았다.


뭐, 뿌듯함보단 억울함의 비중이 더 높긴 해도 열심히 하면 하는 만큼의 인정과 보상이 잇따르긴 했다. 들이는 수고에 비하면 그 천장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게 문제였지만.




내가 좀 눈치 없고 둔한 편이긴 해도, 다행히 나를 갉아먹으려는 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열정을 악용하는 악당들의 술수로부터 요리조리 피해 다니긴 했지만, 그만큼 한 곳에 자리 잡질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근데 방황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난 매 순간 열심히 하려는 사람으로부터 쉬운 일만 골라서 하려는 얍삽이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매 순간마다 진심을 들여 고민을 해봤자 덕은 회사가 다 본다고 생각하니, 두뇌를 필요 이상으로 쓰기가 싫었다. 이래나 저래나 월급이 매한가지라면 그냥 쉽고 편한 일이나 했음 좋겠다는 바람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나의 진취적인 성향은 좀처럼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손에 일만 잡히면 그게 어떤 일이든 간에 항상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바빴다.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주어지기만 하면 '좀 더 쉽고 편한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빠르게 해낼 순 없을까', '반복작업을 수행해 주는 프로그램 같은 건 없을까'와 같은 생각들을 내내 하곤 했다.




예전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맡았던 업무 중 하나가 재료준비였다. 처음 그 일을 가르쳐주던 형님은 평균 3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내가 직접 해보니 3시간이 걸리긴 했다. 그 형이 가르쳐준 방법대로는 말이다.


한 가지 일에만 3시간이라니, 끔찍했다. 일단은 배운 대로 하되 조금씩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혼자서 연구했다. 주방에 있는 칼이란 칼은 다 써보고 재료통 배치나 작업순서도 계속 바꿔갔다.


결국 난 장장 3시간에 걸친 준비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매니저에게 인정받아 시급이 올랐었다.



직장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볼 때도 가끔 반복작업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구글에 검색부터 하는 편이다(네이버는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그럼 거의 대부분은 내가 필요한 기능을 수행해 주는 매크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매크로를 쓰면 보통 1시간 정도 걸릴 만한 일을 5분도 안 돼서 끝낼 수 있게 된다. '뭔가 있을 것 같은 기능'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구글로 검색만 하면 대부분은 다 찾을 수 있었다.


사람 하는 일 다 비슷하고, 사람 생각하는 것 또한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건 그렇게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건 나름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숱한 노력들의 보상이 오직 자기만족뿐이라는 게.


아까웠다. 잘해봤자 의미 없는 일에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더 나은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


누적되길 원했다. 내 고민의 흔적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만이 지니고 있는 귀한 에너지를 남 좋은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그 어떤 것을 위해 투자하고 싶었다. 그런 것을 찾기만 한다면, 뭔 일을 내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찾지 못해서 항상 답답했었다.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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