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Dec 20. 2023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2

도저히 컴플레인을 걸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평소에 웬만하면 일을 크게 벌이지 않는 타입이다. 특히 부정적인 일은 일단 피하고 본다. 그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말이다.


그런 마음을 먹고살아서인지, 평소 불평불만을 토로할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다. 스스로도 운이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근데 그런 내가 컴플레인을 걸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 전 삼성스토어 매장에서 구매하여 이제 막 집에 도착한 새 건조기는 한눈에 봐도 상판이 눌려 있었다. 각종 버튼이 달려 있는 전면과 본체를 감싸고 있는 상판이 맞붙은 지점이 위아래로 어긋나 있었다. 


'기사님은 이게 눈에 안 보일까.'


눌린 상판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서로 입장이 난처해질 법한 말을 꺼내야 했지만 마음 같아선 그 순간을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 잠깐 편하자고 기사님을 그냥 돌려보냈다간, 건조기를 쓰는 내내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그리고 하자를 발견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아내에게 적지 않은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동시에 남편으로서의 신뢰도 금이 갈 것이었다.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온 방식이고 나발이고 할 때는 해야지 그래도. 기사님이 너무 억지를 부리지 않기만을 바래야지.


"기사님 여기 한 번 봐주실래요? 건조기 상판이 좀 눌린 것 같은데."


"예?"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뭔가 '꼬임'을 감지한 게 느껴지는 듯한 표정이 기사님의 얼굴에 드러났다.


기사님은 내가 짚은 곳을 보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내게 건넸다.


라고 해야 되는데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건조기 상판의 눌려있는 곳을 계속 만지작 거렸다. '저렇게 만지면 뭐가 달라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난 성격이 느긋한 편은 아니지만, 기사님의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서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기사님의 머리가 급속도로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자 발견은 내가 먼저 했지만, 상황은 기사님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했을 터였다. 그분은 선수니까. 그럼에도 꽤 오랫동안 건조기 눌림 자국을 만지작 거렸던 건 아마 '받아들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인고의 시간이 끝났는지 드디어 기사님이 입을 열었다.


"고객님, 이건 참.. 당황스럽네요. 분명히 새 제품을 가지고 왔거든요."


"아, 예…"

당연히 새 제품이겠지.


"아까 분명 앞에서 보셨죠? 일부러 박스도 안 뜯고 문 앞까지 들고 온 게 완전히 새 거라고 보여드리려고 그런 거거든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두 가지 생각이 음속의 속도로 교차하며 머릿속에서 미세한 지진을 일으켰다.


"예.. 저도 봤죠. 새 거 들고 오시는 거. 근데 뭐, 어쨌든 눌려 있긴 하네요. 가지고 오실 때부터 눌린 제품을 가져오신 거 같은데요."


기사님이 뭔 죄가 있을까. 비닐과 박스에 가려져서 제품상태는 볼 새도 없었을 텐데.


다만, 설치를 다 하고도 그 벌어짐을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친절함에 비해 꼼꼼하시진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보고도 모른 척했거나(평범한 내 눈에 보일 정도로 벌어짐이 컸으니).


"하, 참 난감하네요."

기사님도 답답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푸념하는 건 좋은데 '조치'를 미루는 건 답답했다. 매뉴얼이 없는 건지 조용히 넘어가주면 안 되냐는 무언의 시위를 하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분 같진 않아 보였는데, 상황상 무책임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제가 담당자분이랑 통화를 좀 해보겠습니다."


"아, 네."

진작에 좀 하지.


점심시간이어서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상태로 우린 서로 뻘쭘한 분위기 속에서 오후 1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회사 점심시간 때 잠깐 집으로 와서 건조기를 받기로 한 거였다. 건조기 설치가 끝나면 아내가 요리해 놓은 고등어찜을 데워먹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허나, 그 약소한 꿈은 몸이 살짝 불편한 건조기 이모님이 찾아오시는 바람에 보기 좋게 무산이 됐다.


'기사님도 점심을 못 드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상황에서 지금 밥 생각이 날까 싶었다. 그저 이 집에서 빨리 나가고 싶을 터였다.




보통 난 점심시간이 1시에 끝난다고 해서 1시 정각에 바로 일을 시작하진 않는다. 최소 10분 이상은 게으름을 피운다. 근데 아까 전화를 받지 않았던 담당자라는 분은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모양이었다. 정확히 1시 정각에 전화가 왔다.


10분 이상의 기다림이 아쉬울 정도로 통화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상판 교체'


설치기사님이 받은 오더였다.


예상은 했지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불량품이 도착했으면 담당자랑 통화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새 제품으로 교체해 주는 게 맞지 않나'싶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멀쩡한 건조기를 다시 가져오라고 하고 싶었다. 


"고객님. 제품이 기능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상판만 새로 교체하면 될 거 같거든요."


설치기사님은 '상판 교체하는 선에서 그냥 좀 넘어가주세요'라는 마음이 담긴 눈빛을 내게 쏘고 있었다.


만약 새 차를 구입했는데 범퍼가 찌그러져 있다고 했더니 '그럼 범퍼만 교체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아 예, 감사합니다.'라고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범퍼가 찌그러졌는데, 엔진에 이상이 없다고 해서 범퍼만 교체하면 그게 끝날 일인가. 난 '기능'만 산 게 아니라 기능을 포함한 '제품'을 산 건데.


그래도 그냥 알겠다고 했다. 상판 교체한답시고 볼트 풀고 다시 조이는 게 찝찝하긴 했지만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저분이 뭔 죄가 있겠는가.




한동안 상판은 잊고 살았다.


그 사이 건조기를 직접 써 보니 듣던 대로 훌륭하긴 했다.


식기세척기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은 것 같았다. 특히 건조기 이모가 수건 하난 기똥차게 잘 말렸다. 햇빛에 마르면 뻣뻣하기만 하던 수건씨가 그리도 부드러운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쉽게도 건조기 뽑기를 잘못하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다 만족스러웠다.


며칠 후, 건조기에 대한 흡족감이 다 가시기도 전에 상판을 교체하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번처럼 점심시간 때 만나기로 했다.


다시 며칠 후, 전에 뵀던 기사님이 또다시 집을 방문했다. 특유의 친절함이 돋보이는 인사를 건네는 기사님의 얼굴에서 '머쓱함'과 '죄송함'을 엿볼 수 있었다.


'기사님이 죄송할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한 손엔 연장가방을, 한 손엔 새 상판이 둘러싸인 박스를 쥔 채 빠른 걸음으로 베란다로 향하는 기사님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드르륵. 드르륵. 탁. 탁. 드르륵.


"고객님, 상판 교체 다 끝났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베란다로 들어갔다. 지난번엔 점심을 굶었지만, 오늘은 점심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시 회사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은 꿈을 너무 야무지게 먹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이번엔 기사님이 정말 내게 죄송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을 마주했다.


새로 교체한 상판도 불량이었던 것이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매럼ㅈ;렂ㄹ머ㅑㄹ멎ㄷ롬ㅈ



  

[이전 에피소드]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1

'드디어 우리집에도 건조기 이모님이 도착했다'


[마지막 에피소드]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3

'하마터면 제값 주고 불량품을 살 뻔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