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Dec 21. 2023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3

하마터면 제값 주고 불량품을 살 뻔했다


이전 이야기

큰맘 먹고 삼성 건조기를 샀다. 근데 상판이 눌려 있는 불량품이 도착했다. 설치기사님은 담당자와 통화를 하더니 '기능상엔 문제가 없으니 상판교체를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조치를 내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새 제품으로 바꿔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며칠 후, 이전에 뵀던 기사님이 새 상판을 가지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집으로 방문했다. 볼트를 풀고 조이는 드르륵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상판교체는 금방 끝났다.


별 문제 없겠지 싶었다.


지난번과 같은 눌림 자국은 보이지 않아서 교체가 잘 끝나 보였다. 새로 갖고 온 상판이 뽁뽁이와 박스에 잘 감싸져 있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얼룩덜룩 물자국도 보이고 더러웠던 건 그냥 넘어갔지만 말이다.


기사님은 우리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터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수고하셨다는 말을 건네며 얼른 가보시라고 고생하셨다고 후련함이 섞인 말도 덧붙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사님에게 다시 연락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기사님도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문제가 있었다.




기사님이 가시고 나서 건조기를 다시 보니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틈이 벌어져 있었다.


'원래 이 정도는 벌어지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싶어도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른쪽은 딱 붙었는데, 왼쪽 부분만 뭐가 들어가도 곧 들어갈 것처럼 틈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숨이 나왔다.


상판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지난번처럼 눌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틈도 벌어져 있거니와 울룩불룩한게 접착면이 잘 맞지도 않았다. 심지어 우측 모서리는 칠이 까진 건지 어디 찍힌 건지는 몰라도 손상이 나 있었다.


정말 컴플레인 걸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만, 기사님과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분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고객센터는 되려 배송기사와 얘기를 하라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기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건조기 상판 상태를 사진으로 잘 보이게 찍어서 기사님에게 먼저 전송한 다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니나 다를까, '달갑지 않은 상황이 도래했음'을 직감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마 내 번호를 보자마자 그 기사님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기사님, 교체한 상판에 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틈이 많이 벌어져 있네요. 제가 보낸 사진 한 번 봐주시겠어요?"


"틈이요? 잠시만요."


기사님이 무슨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고객님, 원래 이 정도 틈은 벌어져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사진을 제대로 보기나 한 건가 싶었다.


"근데 그게 만약 정상이라면 두 가지가 안 맞아요. 건조기 뒤에 있는 세탁기가 같은 모델인데, 그건 눈에 띄는 틈 없이 잘만 딱 붙어 있거든요. 그리고 건조기만 보더라도 기사님 말씀대로 '원래 그런 거'라면 틈이 일정하게 벌어져야지, 한쪽만 벌어져 있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 근데 고객님. 이건 진짜 원래 벌어져 있는 거긴 하거든요."


"그게 원래 그만큼 벌어져 있는 거라구요? 한쪽만 틈이 그렇게 확 벌어진 게 정상이란 말씀이세요? 그리고 우측에 찍힘 자국은 보셨어요?"


"아, 고객님 그건 찍힌 게 아니라 도장처리된 게 까진 겁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찍혔든 칠이 까진거든 어쨌든 손상이 갔다는 건데, 왜 그걸 설명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내가 너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사님은 '건조기는 문제없고, 나도 잘못한 게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만 계속했다. 친절함은 좋았지만, '조치'가 너무도 미흡하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애매하게 굴면 안 될 것 같았다.


새 걸로 교체해 주세요.


"네!?"


기사님은 내 말에 놀란 것 같았다. 나도 내 말에 놀라는 기사님의 반응 때문에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제품으로 교체해 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어야 하지 않나.


"솔직히 처음부터 새 걸로 바꿔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근데 상판만 교체해 주신다길래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저도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어서 일단 알겠다곤 했습니다. 근데 새로 교체한 상판이 모서리는 찍혀 있고 울퉁불퉁 접촉면과 맞지도 않고 틈까지 벌어져 있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제품 새 걸로 바꿔 주세요."


"고객님, 기능상으론 정말 문제가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상판만 교체했던 건데 아예 새로 바꿔 달라고 하시면..."


"기사님. 만약에 새 차를 샀는데 범퍼가 찌그러져 있어요. 근데 엔진은 문제없으니, 범퍼만 새로 달아준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부터 불량품이 왔으면 새로 바꿔주셔야지, 부품만 갈아 끼우는 게 어딨습니까?"


기사님이 너무 당황스러워하시니까, 되려 내가 진상 같았다. 그럼에도 기사님의 예상치 못한 대응을 상대하다 보니 진상이라도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고객님, 그러면 제가 담당자랑 전화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전화 주세요."


'처음부터 그렇게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굳이 서로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었던 거 같은데'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 불편한 통화를 끝내고 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고객님. 담당자랑 통화를 끝냈는데 저희가 두 가지 조치를 해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하나는 상판 재교체를 하는 방법이 있구요, 다른 하나는 제품값의 10%를 보상으로 드리는 겁니다."


난 예전에 목수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깨우친 것 중 하나는 '사람 손을 타는 건, 건드릴수록 지저분해진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상판 재교체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럼 남은 건 보상금액을 받는 거였는데, 난 그 자리에서 10%라도 받고 끝내고 싶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아내랑 통화 한 번 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는 기사님의 제안을 탐탁지 않아했다. 아내는 보상금액을 더 받아야 하거나, 처음부터 불량품이 왔으니 새 제품으로 바꿔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난 실랑이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단, 더 이상 기사님과 얘기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기사님. 그 담당자라는 분 연락처를 좀 알 순 없을까요? 상판을 다시 교체하는 것도, 보상을 10%만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아.. 보상은 더 드리고 싶어도 규정이 딱 10%까지만 해드리기로 책정이 돼 있어서요."


보상금액은 10% 까지라는 확실한 규정이 있는데, 불량품이 도착했을 시 새 제품으로 교체해 준다는 지침은 없는 건가 싶었다.


잠시 생각하느라 약간의 침묵이 흘렀는데 그 사이 기사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담당자와 다시 한번 얘기해 보고 금방 연락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님, 이번엔 이례적으로 15%까지는 보상을 해드리겠다고 하거든요. 그건 어떠세요? 그 정도면 저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15%면 20만 원이었다.


반나절동안 주고받은 불편한 통화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아내에게 이 정도 선에서 끝내자고 말했다. 아내도 썩 내키진 않아 했지만 마지못해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렇게 뜻밖의 컴플레인은 구매금액의 15%를 보상지급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주변에서 새 물건을 살 때 뽑기를 잘못해서 불량품이 도착하고, 컴플레인으로 애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남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막상 비슷한 일을 겪어보니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새 물건을 구입해서 집까지 도착하는 중간 과정을 자세하겐 모르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불량도 그냥 넘어갈 정도로 검수가 제대로 안 되는 건가 싶었다.


설치기사분들이 일부러 물건을 문 앞까지 가져와서 제품을 언박싱하던데, 애초에 제품상태를 확인도 안 하고 가져올 거면 그런 언박싱도 의미 없는 쇼맨십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한눈에 들어오는 뚜렷한 불량을 설치기사님들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발견했다는 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긴 했다.


비싼 돈 주고 물건을 샀는데, 불량품이 와도 새 제품으로 바꿔 줄 생각은 않고 어떡해서든 최소한의 조치로만 해결하려는 게 삼성 측의 최대한의 A/S 서비스였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배송하고 설치하는 데 선수분들이라고 해서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나하나 다 뜯어보진 못할지언정 눈에 보이는 외관이라도 자세히 봐야만 나중에 억울할 일이 없을 터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1

'드디어 우리집에도 건조기 이모님이 도착했다'


[이전 이야기]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2

'도저히 컴플레인을 걸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매거진의 이전글 웬만하면 컴플레인 걸기 싫었는데 PART.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