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Jan 18. 2024

그놈의 "네 어깨가 무겁다."라는 말 덕분에

가족들과 거리를 두게 된 계기


장남이라는, 근거가 불충분한 명분으로 어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 나의 어깨를 짓누르길 좋아했다. 


똑바로 살지 못하는 본인들의 삶이 내가 보고 배운 세상의 전부이건만, 대체 내게 뭘 그리도 바라고 기대했던 것일까. 장남이 대체 뭐라고. 어른들은 내가 맞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살갑게만 대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먹히지 않았다. 말썽 부리는 다른 애들과 난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나도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면서 놀았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그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었다. 


어른들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 잘한 것도 없거니와 잘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가뜩이나 마음 졸이며 지냈다. 


하지만 그런 속을 알 리가 없는 어른들은 


"네 어깨가 무겁다." 


라는, 어찌 보면 상당히 무례할 법도 한 말을 잊을만하면 내 귀에 속삭이곤 했다. 


불쾌한 건 나와 피가 섞인 자들의 압박 덕분에 정말 책임감이라는 게 내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깃든 책임감은 아쉽게도(?) 어른들이 기대했을 거라 짐작되는 그런 류의 마음이 아니었다. 그들이 죄 없는 어깨를 하도 짓눌러준 덕분에 내 안에선 가족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의지가 샘솟았다. 


달리 말해 어른들이 무리하게 날 밀어붙인 바람에 가족들과의 유대감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내려놓고, 적당히 떨어져서 지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내 인생이라지만,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이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중 내가 가장 대차게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가족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이후로 비로소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   




곧 만나게 될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키는지 깊게 고려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출 수 있기를.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에게 말 한마디 가볍게 하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 보고 배우더라도, 전혀 거리낌이 없을 만큼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새해 인사를 돌리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