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Jan 21. 2024

돈이 있어도 사고 싶은 물건이 없다

물건에 집착하지 않으면 삶에 평안이 찾아온다


내 물건들은 평균 수명이 거의 5년쯤 된다. 옷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다. 옷이나 신발이나 구멍 나기 전까지는 잘 입고 잘 신고 다닌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으면 결혼 후 아내가 내 물건들은 싹 다 버리고 새로 사 줄 정도였다.


가방은 두 개 있다. 노트북 전용 가방, 그리고 백팩 하나. 둘 다 사용한 지 10년 넘었다. 쓰는 데는 별 문제없지만 오래 사용한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처음 살 때부터 오래 쓸 것 같아서 무난한 디자인을 골랐다. 덕분에 질리지 않게 잘 쓰고 있다.


휴대폰도 번호판에 숫자가 안 보일 정도로 해지고, 키판이 뽑힐 정도로 낡기 전까지는 계속 사용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최신형 폰을 사고 싶으면 멀쩡한 것도 집어던져서 박살 내는 동생과는 달리, 한 번 사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오래 쓰는 내게 부모님은 새로 사 줄 테니 폰 좀 바꾸라는 말을 먼저 건네곤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14 pro는 3번째 스마트폰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5년 전에 20,000원 주고 샀다. 중국산인데 희한하게 고장도 안 난다.


물건 살 때는 두 가지만 생각한다. 첫 번째는 오래 쓸 수 있는가. 두 번째는 디자인이 무난한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가격은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 난 실한 물건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감각 같은 게 있는 건지, 고르는 것마다 아주 잘 쓴다. 아니면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오래 쓰니 좋은 점이 있다면 딱히 사물에 신경 쓸 일이 없다는 점이다. 비싸고 좋아 보이고 유행 타는 물건이 아니라, 정말 필요하고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물건을 추구하다 보니 평소에 뭘 살 일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 1년에 240만 원 쓸 수 있는 복지카드를 주는데, 살 게 없어서 그 카드로 작년 1년 동안 내 차와 아내 차에 기름만 넣었었다. 그래도 돈이 너무 많이 남아서 남은 돈으로 건조기를 샀다(이월되지 않아서 해 지나기 전에 남은 돈을 다 써야만 했다).


돈이 있어도 딱히 살 게 없고, 당근마켓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필요한 물건만 갖고 잘만 사는 지금의 삶은 참으로 안녕하다.


이런 글을 쓰다 보니,

유독 일상이 더욱 풍요롭게 느껴지는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놈의 "네 어깨가 무겁다."라는 말 덕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