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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싸잡아 욕했던 지난날들을 반성하다

더 좋은 글쟁이가 되고자 하는 이유

by 달보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네이버블로그에 주로 독후감을 썼다. 짤막한 에세이도 간간이 쓰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책 한 권을 읽고 감상평을 쓰는 글이 대부분의 포스팅을 차지했다. 그렇게 꾸준히 1일1포스팅 이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책리뷰 포스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판사 관계자분이 메일로 제안을 하기도 했고, 신인작가가 댓글로 직접 본인 책을 보내겠다며 리뷰를 부탁한 적도 있었다.


처음엔 그런 것들이 그저 신기했다. 여러 이웃들의 블로그를 방문하며 '도서제공'이라는 문구를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도서리뷰 제안은 모두 받아들였다. 공짜로 책도 제공받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제공받은 책들 중에서 인상 깊게 읽은 책은 거의 없다. 기억을 다시 떠올려 봐도 생각나는 제목이 없다. 사실 원래부터 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놓여 있는 책들도 그리 감명 깊게 읽는 편은 아니었다(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를 선호한다). 그래서 어중간한 책들이라면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근데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브런치로 넘어오기 직전엔 네이버 블로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 염증에 불을 붙인 건, 리뷰 제안을 조건으로 무료로 제공받고 있었던 책들이었다.


나도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작가지망생이다 보니, '요즘 나오는 책들이 형편없다'와 같은 말이 들릴 때면 가슴이 아려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근데 차마 그걸 부정할 수가 없는 게 출판사 제공으로 신간을 몇 권 받아보다 보니 나조차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음, 좀 별로긴 하네.'

이 정도 감상이면 말도 않았을 것이다.


'아, 시간 아깝다'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이딴 걸 책이라고 썼을까'

'이런 게 베스트셀러라고?'


갈수록 이런 생각만 나는 책들이 우리 집 문 앞에 택배로 날아왔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싫었다. 그런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더 깊고 좋은 책들보다 많이 팔린다는 현실이.




다만 본 글은 그런 세태를 둘러 까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반성하는 글이다. 앞서 언급하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욕했던 힐링 에세이

내가 쓰레기통에 당장 버리고 싶었던 책은 '힐링 에세이'류였다. 겉표지는 반짝반짝 번지르르한데 속 내용은 형편없었다. 와중에 띠지에 있는 작가분의 외모는 훌륭했다. 덕분에 출중한 외모와 책 내용은 반비례라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편견으로 굳어질 뻔도 했다.


쏟아지는 힐링 에세이 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SNS의 글들을 짜깁기 해놓은 책이 많았다는 점. 원래부터 난 책 내용의 80% 이상을 사례로 채웠거나, 이런저런 유명 일화들을 모아놓기만 한 책들을 혐오했다. 그러니 SNS의 감성팔이 글들을 모아놓은 느낌밖에 들지 않는 그놈의 힐링에세이를 곱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두 번째는 감성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소리만 늘어놓는다는 것이었다. 대개의 말들이 이런 식이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때까지 잘해왔잖아.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힘내, 사실 모두가 널 응원하고 있어."


'이런 말들에 위로받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힘든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내가 씹었던 신인작가

한 번은 본인 책을 리뷰해 줄 수 있겠냐는 댓글을 직접 단 신인작가님이 있었다. 그렇게 직접 문의를 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난 책이라면 무조건 다 좋았기 때문에 일단 수락했다. 힐링에세이에 마음이 데이긴 했어도, 읽고 나서 판단하잔 생각이 있었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글쓰기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접하게 된다. 학원 강사가 알려주는 규칙을 기반으로 각자만의 책을 쓰고, 커리큘럼이 끝날 때 즈음에 대량으로 투고를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 말이다. 사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은 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인 작가님의 책을 받아 읽자마자 든 생각은 '아, 이분 학원 냄새가 강하게 난다'였다.


뭔가를 따라 쓴 것 같긴 한데 어설펐다. 나름 책의 컨셉에 맞는 키워드를 정한 건 좋지만 남발이 심했다. 자기계발서 느낌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치고는, 흔한 에세이보다도 형편없는 불쌍한 척하는 일기 같았다. '난 형편 없었다'에서 '독서와 글쓰기로 깨달았다'로 넘어가더니, '우린 모두 인생을 바꿔야 한다'로 끝나는 책이었다.


난 여느 책들도 블로그에 독후감을 쓸 때면 솔직하게 쓰는 편이었다. 좋은 건 한없이 좋다고 쓰지만,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책은 가차 없이 내리깠다. 실제 책을 쓴 저자분이 블로그에 죄송하다는 댓글을 단 적도 있었다.


그런 나였기에, 그 신인작가님의 책은 얄짤없었다. 그 책은 아마 내가 블로그에 썼던 독후감 중에서 가장 혹평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덕분에 책 제목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만 같은데서 오는 불쾌감도 한몫했지만, 그 분에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오히려 도움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까기만 했던 오만하기 짝이 만행을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보니 나라고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도 내가 욕했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글을 쓰고 있었다. 허무맹랑하고도 막연하게 말이다. 내가 글을 쓰며 자주 언급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내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다."

"제3의 눈을 개방해야 한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지나간다."

"그냥 많이 써라."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하라."

등등.


보는 것처럼 그저 허울 좋은 말뿐이었다. 물론 마음에 없는 말을 널브러뜨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애매모호한 말들인데,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더 쓰는 게 귀찮아서 그랬던 걸까. 사실 마음 같아선 그렇게라도 생각해버리고 싶다. 왜냐하면 더 많은 글로써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이해가 현저히 부족했다는 게, 더 자세히 쓰고 싶었어도 쓸 수 없었을 거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가 썼던 초기의 글을 읽어보는 게 두렵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만 같다. 소스를 찾느라 가끔 옛날 글을 열어보기라도 하면 금세 얼굴이 붉어진다. 물론 그만큼 성장했다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반성은 또 하지 않는다는 게 찝찝할 뿐이다. 뜬금없지만 그렇게 기록의 중요성이 와닿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는 아내가 자신의 뮤즈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가 쓰는 글의 예상독자는 바로 아내이며, 그런 아내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듣는다는 걸 본 적이 있다.


실은 나의 아내도 내게 그런 존재다. 실제로 아내는 "김영하처럼 내가 당신의 뮤즈야.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라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지금은 후회를 많이 한다. '아내 말을 진작에 좀 들을 걸'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반성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예전부터 아내가 숱하게 언급을 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적한 것들 모두가 하나같이, 뒤늦게서야 커다란 문제라고 깨우친 것들이었다.


1. 문장이 너무 길다.

2. 부연설명이 없다.

3. 너만 아는 소리 하지 말라.

4. 글이 불친절하다.

5. 가끔 너무 길게 쓴다.


아내는 재능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남의 글이라서 당사자보다 더 잘 보이는 걸까.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아니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싶었던 거였겠지만, 그 모든 걸 단번에 알아본 아내가 대단하기만 하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자체적인 반성이 성립되는 건, 어찌 보면 아내가 내 마음에 미리서 각종 문제점들을 먼저 심어놔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깨달음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아내가 일전에 했던 말들과 교집합을 이루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여하튼 내가 신랄하게 욕했던 힐링에세이와 그 신인작가님에게 심심찮은 사과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그 작품들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무조건 내리까기만 했던 무례함은 부끄러운 용서를 구하고 싶을 따름이다. 분명 그 안에서 배울 점도 있었을 텐데.


주제 넘게 남들을 함부로 손가락질했던 세월의 흔적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진하고 담백한 글을 써 나가는 매력적인 글쟁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반성은 어릴 때만 할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어째 그럴 일이 자꾸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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