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Feb 12. 2024

사유의 바다에 자연을 담갔더니, 겸손이 떠올랐다

언제나 겸손하고자 하는 이유


가끔 노을이 지고 있는 아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동네 엄마들이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소리칠 만할 정도의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어찌 저리도 청량한 색감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푸른 하늘도 좋지만, 왠지 모르게 겸손해지는 황금빛 세상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건 어딜 가나 노오란 전구색이 가득한 공간을 애정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노을빛을 머금은 세상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노을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경계로 짚을 만한 단서는 조금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날의 진 풍경은 섭할 만큼이나 금세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마음에 남아 있는 노을의 여운을 어루만져 본다.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생각의 불씨를 좀 더 태워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 닿아본다.


노을과 세상의 경계를 짚어볼 수 없는 건, 애초부터 그 간극을 구분할 만한 지점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답이 없는 게 답인 것에 맺혀 있는 건 아닐까.


난 세간의 진실과 우주의 원리는 세상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때문에 노을의 경계가 없다는 건 너와 나의 경계도, 우리와 세상의 경계도, 자연과 우주의 경계도 없다는 말과 궤를 같이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뜬금없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에 울리는 명제가 있다. 그건 바로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인간의 몸은 외부와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객체 같지만, 알고 보면 바깥세상과 이어지지 않은 지점이 없다. 끊임없이 외부의 것들과 순환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살펴봐도 그렇다.


그래서 그런 걸까.

다른 사람의 흉을 보면 당장엔 짜릿하지만, 잠시 후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게.


그래서 그런 걸까.

남들에게서 못난 모습을 목격할 때, 그들의 일면이 유독 나의 일부분과 닮은 것처럼 느껴지는 게.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겠다.

언제나 겸손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