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Feb 28. 2024

쥐뿔도 없는 내가 아내를 만난 비결

PART 1. 남들과 조금은 다른 시작 ep.1 


"올해 몇 살이고?"


"31살입니다."


"결혼하긴 글렀네."


"예?"


"나이도 먹을 만큼 뭇는데, 애인은 없고 모은 돈도 없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넘어왔는데 결혼은 못 한다 봐야지. 그렇다고 키가 큰 것도 아이고 잘 생긴 것도 아인데, 이빨에 교정장치까지 끼고 있으이 말 다 했지 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곳에서 만난 형님에게 들은 말이었다. 웃으며 농담하듯 던진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 하나 없는 팩트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심적인 데미지는 전혀 입지 않았지만.




난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사람은 어떡해서든 꼭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지'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곧 만나게 될 사람을 기다렸다.


그래서 조만간 내 앞에 나타날 사람 앞에서 떳떳할 수 있게끔 나름의 준비를 했다. 회사 동료들과 적당히 친분을 다진 후로는 모든 술자리를 거절했다. 친구들도 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고 운동을 했다.


모임도 가입했다. 직장인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경로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취미가 독서였던 나는 다른 모임은 고려도 않고 독서모임에 들어갔었다.


모임에 들어간 후로는 평소보다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 정기모임이 열리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람들과 함께 나눌 얘깃거리도 대본까지 만들어가며 정성스레 준비했다. 그게 나를 가장 건전하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지금의 아내가 모임에 들어오고 나서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내게 사람들과 채팅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걸 보며 호기심이 생겼었다고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얻은 호기심 덕분에 내가 열었던 작은 소모임에서 아무도 참석을 하지 않을 때, 그녀 혼자 참석했었다. 우린 이례적이게도 모임을 통해 단 둘이서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마음 하나 먹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남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간의 꾸준한 독서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아니었다면 발톱을 적당히 감출 줄 아는 지혜도, 남의 호기심을 이끌어 낼 만큼의 말주변도 없었을 테니까.




회사 동료들에게 '결혼은 글러 먹었다'라는 말을 들은지 반년이 지날 즈음에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반년이 지난 후 결혼정보회사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갖춘 게 없는 나와, 탄탄하고 안정적인 직장의 인사총무팀 대리로 있으면서, 스스로 벌어 마련한 34평 아파트와 자차를 보유하고 있는 아내는 결혼을 약속했다.


조롱인지 저주인지 분간이 힘든 확언을 퍼부었던 회사동료들은 내 소식을 듣고 믿기 힘든 내색을 보였다. 대체 사람은 어디서 만난 것이며, 만나서도 어떻게 사귀기까지 할 수 있었는지 등의 숱한 질문을 했다. 그에 난 독서모임 들어가서 책 읽다 만났다며 있는 그대로 말했다. 대개의 경우는 비현실적인 얘기를 듣는 것마냥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독서모임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냐고 되물어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누구는 내게 일어난 이야기의 전개가 납득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난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결혼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까다로워지는 세상일지라도,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철석같이 믿고 살았으니까.




난 나를 스치는 인연은 쉽게 흘리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괜찮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갖은 핑계를 들먹이며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아까웠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일단 사귀고 나서야 제대로 밟아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손해 보기 싫은 마음에 요목조목 따져가며 미리서 사람 갖고 저울질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연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은 만나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좀 다칠지언정 관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뜻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보는 게, 평생의 인연을 놓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마음은 시간의 힘으로 치유되는 반면에, 한 번 지나간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진 건 쥐뿔도 없었음에도 자존감 하나는 충만했다. 달리 말해 비록 당장에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결코 세간의 꼭두각시처럼 어영부영 살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 있었다. 없어 보이는 건 겉으로 보이는 게 그럴 뿐이지, 그동안 이리저리 부딪히며 겪어왔던 숱한 경험들은 분명 빛을 발하게 될 거라고 믿어왔다. 더불어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독서와 운동은 삶에서 빼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부분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를테면 마련한 집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모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 세월을 후회하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대신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예컨대 관심이 가는 사람을 만나면 남들에 비해 미흡해 보이는 현실을 감출 게 아니라, 일상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와 삶을 진중하게 살아가는 남다른 자세를 어필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난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인연이 연인으로 발전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도 여전히 진심이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었다. 좋은 집, 좋은 차, 사회적인 입지 같은 게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자명한 진실이 증명되는 사례는 세상 곳곳에서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으니까.


너와 나의 간극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의 기반이 탄탄히 다져지지 않으면, 경험상 원만한 관계는 오래도록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계를 대할 때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난 더 집중했다.


사랑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관계의 여부는 결국 사랑하는 마음에 달려 있었다.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펀딩 오픈

에세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의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의 본질인 '서로 잘 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저희 부부만의 독특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결혼을 맘에 품고도 망설이거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향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리며, 또 그런 분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에요.

후원자분들에게는 저자 사인본과 온/오프라인 북토크 참여권을 무료로 드리고 있으니 많은 후원 부탁드릴게요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후원하기

https://tumblbug.com/newlyweds


이전 01화 실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결혼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