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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26. 2024

실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결혼식

prologue


사이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영향 탓인지, 어릴 때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훗날 다정한 남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건 원대한 삶의 목표 중 하나였다. 때문에 쉽고 편한 길보다는, 힘들어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다만, 결혼을 꿈꾸던 내가 하나 하고 싶지 않은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결혼식이었다. 지인들의 결혼식을  몇 번 다녀보니 '과하게 힘이 많이 들어간 절차'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세상 모두가 축하주는 좋은 자리 같지만, 한편으론 결혼생활의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부부라면 날짜, 장소, 예물, 혼수, 신혼여행 등 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현실적인 조건에 들어맞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비슷하게 맞추려고만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기준이 '남'인 것이다.


근데 그 안에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도 갖추려 한다. 남들과 비슷한 수순을 밟아가면서 그들과는 또 다른 차별점까지 사로잡고 싶은 모순적인 욕망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결혼식과 관련된 일을 놓고 왈가왈부할 때 가장 골치 아픈 점은 정답이 없는 일에 정답에 가까운 현답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다를 바가 없고, 자세히 봐야 겨우 알아볼 법한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곱절로 불어나기 마련이다.


결혼식을 치러야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고 하면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식은 단순한 행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서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공식적인 부부가 되는 건 혼인신고서 한 장이면 족하다. 결혼식은 그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단순한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잘 지내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본질이다.


난 결혼식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이기 싫었다. 적당히 하고 싶었다. 거창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애쓸 시간에 사이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원만하게 풀어내는 방법, 제2의 직업, 노후준비 등을 준비하고 공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서 저축이나 투자를 하는 게, 결혼생활이라는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 여겼다. 어디 가서 이런 얘기하면 가끔 축의금을 언급하던데, 축의금은 내 돈이라고 여기지 않는 편이다. 우리나라 정서상 축의금은 그리 맑고 순수한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많은 투자를 하는 건 본인만족도 있겠지만,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심리도 충분히 녹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식에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기대치에 부합하는 충족감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아무리 식이 화려한들, 결국 하객들에겐 남의 잔치에 불과하니 그리 자세히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지루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본식은 구경도 않고 식권만 받아서 밥부터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혼식도 몇 번 다녀보면 '결혼식도 별 거 없구나',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절차와 형식이 빚어내는 특유의 따분함은 고스란히 하객들의 몫인 것이다.


학교로 치면 결혼식은 곧 입학식이었다. 입학식에서 뽐 낼 만한 옷을 사는 것과 진로와 적성에 맞춰 본인에게 적합한 공부법을 고민하는 것 중 어느 게 중요한지를 생각해 본다면, 결혼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난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지인들에게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혀왔었다. 불필요한 절차는 되도록이면 다 빼고 싶다며 말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날 부정했다. 되려 가르치려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 정도는 해야지."

"그래도 그건 아니지."

"요즘은 다 그렇게 해."

"남들처럼 하는 게 효도야."


평소에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여기지 않으려 한다. '타인은 곧 스승이다'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매 순간 겸손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얘기를 들을 때면 귀를 의심하고, 상대방을 다시 보게 된다. 내 세계관에서는 결코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없는 얼토당토 안 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숱한 사람들이 민족 문화와 사회 분위기에 젖어 들어 머릿속에 주입된 것들을 자신만의 온전한 생각이라며 착각하고 있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이면서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더불어 어긋난 견해를 마주하면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에 가까운 방어태세를 갖추기도 한다.


그렇게 자아는 점점 더 단단해지며 출처 불분명한 생각들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그런 것을 '상식'이라고 포장하는 부류도 있는데, 상식은 상식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객관의 본질은 주관인데도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긴 어렵지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 아주 쉬운 세상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기만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고 있는 반면에 비주류로 밀려나는 고통을 감수하려 하진 않는다. 나라는 독보적인 '상'이 있는데, 그 상과 상이하게 살아가는 건 곧 이상한 삶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호주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시절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화려한 장식도, 특별한 절차도 없는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자연이 무대였고, 주변 상가 야외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하객이었다.


우리나라 결혼식에 비하면 별 거 없어 보이지만, 세상 순수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그런 그림 같은 장면들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 그런지, 내 눈에 우리나라 결혼식에 끼어 있는 거품들이 유독 더 돋보일 수밖에 없는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혼식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었기에 추구하는 방향이 확고할지언정 상대방과 뜻이 어느 정도는 맞아야 했다. 훗날 결혼할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조율도 할 생각이었다. 결혼식을 치르는 방식 때문에 관계에 흠집을 내긴 싫었으니까.


그런데 운이 좋게도 지금의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식에 대한 견해가 나와 비슷했다. 아내도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 만큼 많은 비용도, 많은 에너지도 들이고 싶지 않아 했다. 덕분에 우린 평범하지 않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마찰이나 갈등이 없었다.


아내와 나는 허례허식을 싫어했다. 진중한 마음이 결부된 채,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절차를 밟는 건 우리의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았다. 영혼 없는 집단의식에 휘말리긴 싫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우린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의 단출한 결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도 행복하게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우리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특별하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결혼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비혼주의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모험을 권장하고자 말이다.

 

다만, 힘을 좀 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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