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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하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건네보는 글

퇴고하는 방법이 꼭 글을 수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by 달보


매일 빠짐없이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는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과 어긋나지 않은 말인지 매번 체감한다. 글을 쓰고 나면 고칠 부분이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평소 사람들에게 말로는 쏟아내듯 글을 쓴다곤 하나, 어느 정도 손은 봐가면서 쓰기도 했을 터인데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아주 엉망이 따로 없다. 맞춤법, 띄어쓰기가 맞지 않는 건 기본이고 문단끼리 겹치는 내용도 많다.


참 다행인 건 계속 만지고 만지면 그만큼 다듬어지는 게 글이라는 점이다. 만약 한 번 썼던 글을 수정하지 못하는 제한이 있었다면 여태 썼던 글은 아마 부끄러운 마음에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단 생각에 계속 퇴고하기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난 시간의 중요성을 깨우친 덕분에 글쓰기를 발견할 수 있었고,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결코 유한하지 않은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더 절실히 깨닫는 바이다.


시간은 곧 기회다. 같은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쓰는 글은 오늘이 아니면 쓸 수 없다. 오늘만이 가지는 특수한 환경과 분위기는 어제도 없었고 내일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글이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나중에 고쳐 쓸 거라는 핑계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글을 발행하지 않고 썩히는 건 아깝게 여길 만한 일이다. 퇴고는 글 쓰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절차이지만, 퇴고를 핑계로 미루는 글은 다시 손보지 않게 될 확률도 그만큼 높다.


물론 퇴고를 위해 글을 의도적으로 묵히는 건 꽤나 좋은 방법이다.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원래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관건은 얼마나 묵히는가이다.


경험상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이 흐른 뒤에 이전의 글을 다시 읽어 보면, 퇴고해서 될 수준이 아니라 거의 새로 써야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글이 많았다(수정할 부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성장이나 변화가 없었다고 볼 만하다). 초고를 약간 다듬는 것과 초고를 아예 새로 써야 하는 건 부담감에서부터 이미 상당한 격차가 벌어진다. 아무리 글쓰기 습관이 들었어도 그런 경우는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근 1년 간 미친 듯이 글만 쓰면서 브런치 작가로 활동해 본 결과, 공개적으로 글을 발행하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겉으로 보면 사람들에게 글을 공개할지 말지의 여부가 전부 같지만, 알고 보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반응이 있다

플랫폼에 따라, 글의 주제에 따라, 글의 무게에 따라 나뉘지만 어쨌든 글을 온라인에 발행하면 약소한 반응이라도 달린다. 아무래도 반응이 달리면 글쓴이는 자신이 썼던 글을 한 번 더 읽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데, 이게 포인트다.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 말이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다. 맞춤법부터 시작해 조사를 남발한다든지, 비슷한 단어를 자주 썼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글을 쓰는 와중에 수정을 숱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발행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새삼 와닿는 게 또 다르다. '성장'은 아마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욕심이 생긴다

난 평소 글 쓰는 데 괜히 방해만 될까 봐, 브런치의 '통계'를 웬만해선 눌러보지 않는 편이다. 가끔 자료가 필요할 때만 몇 가지를 확인코자 들어간다. 확실히 그럴 때마다 준수하게 오르고 있는 내 브런치의 여러 수치들을 확인할 때면 기분이 좋긴 하다(그럼에도 최대한 안 보는 게 글쓰기에 가장 좋긴 하다). 더불어 꾸준히 글을 써 온 보람도 느낀다.


통계 안에서는 구독자 수, 조회 수, 라이킷, 댓글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중 가장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건 발행한 글 수이다.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가 지금의 내겐 가장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지표다. 참된 글쟁이가 되기 위해서라도 가장 공략할 만한 부분이 바로 글을 많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발행한 글 수 말고 그 외의 다른 수치들은 애를 써서라도 무시하고자 맘 속으로 여미곤 한다. 구독자 수나 조회 수 같은 것들은 신경 쓸수록 쓸데없이 마음만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괜히 우쭐댔다가 지금의 꾸준함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꾸준함은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기에 그것만큼은 지켜야 했다.


난 내가 글을 잘 써서 구독자와 조회 수가 오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무식할 정도로 글을 많이 쓰다 보니 여러 가지 운과 맞물려 따라온 결과일 뿐이라고 본다.


여하튼 사람들에게 반응도 얻고, 플랫폼을 개발한 자들이 선정한 각종 지표들이 꾸준히 우상향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욕심이 생긴다. 더 잘 쓰고 싶은 욕심 말이다. 욕심도 과하면 좋지 않지만, 적당한 욕심은 적당한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기에 꾸준한 글쓰기에 꽤나 도움이 된다.




직접 글을 써 보니 퇴고는 정말 중요한 단계였다. 초고를 쓰고 나서 며칠 후에 다시 읽어보면 '퇴고하지 않았으면 큰일 났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퇴고하는 게 꼭 썼던 글을 수정하는 것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수없이 글을 쓰고 수정하고 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퇴고법이다'


책을 집필하는 게 아니라면, 쓰던 글을 어떡해서든 매듭을 짓고 새로운 글을 다시 쓰는 것도 퇴고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퇴고하는 과정에서 얻는 효과가 글 보는 눈이 날카로워지고 필력이 올라가는 게 그 기저라면, 한 편의 글을 새로 쓰는 것의 효과와도 많은 부분이 교집합을 이루는 게 아닌가 한다.


매일 새벽밤낮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이젠 습관이 들었다'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든지 이전의 무미건조한 상태로 돌아갈 여지는 충분하다. 거기엔 내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인간 자체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그런 이유로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글을 꾸준히 쓰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언제나 최선의 생각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 내가 잘 되든 아니든.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거나, 글쓰기에 관한 고민으로 애를 먹고 있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무조건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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