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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13. 2022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달보 에세이

그런데 읽는 사람의 기분까지 생각했다면 연애시를 못 썼을 거예요.

저는 시를 쓸 때 제 마음만 생각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은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미칠 것 같던 제 마음만 오로지 생각했습니다.
책 '매일 아침 써봤니?' 중에서






나는 예전부터 편지 쓰는 게 쉬웠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글쓰기도 당연히 거의 해본 적이 없지만 스무살에 입대를 하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내 편지를 받고 읽어본 사람들은 읽기가 편했다고 말한 기억이 많이 난다. 그 뒤로 연애할 때면 난 꼭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나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많이 써서 줬었다.


연애편지가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를 떠올려보면 일단 적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나의 감정에만 충실한 채 막 써내려갔던 것 같다. 어떤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단지 내가 지금 편지를 써서 줄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떠올리고 그에 따라오는 감정과 느낌 같은 것들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수많은 글자들이 적혀 있는 편지지를 발견하게 된다.


책 '매일 아침 써봤니?'의 내용 중에서 '읽는 사람의 기분까지 생각했다면 연애시를 쓰지 못 썼을 거예요.' '제 마음만 오로지 생각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니까 나도 비슷한 심정으로 연애편지를 쓴 게 아닌가 싶었다. 상대방을 떠올리며 글을 쓰되 상대방을 통한 나의 감정에 집중하고 충실했기 때문에 편지를 써내려가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편지를 쓸 때면 잘 보이기 위한 것도 감동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그 당시의 내 마음을 편지지 위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써내려갔다. 그런 이유로 글쓰기가 어렵지 않았고 막힘이 없었고 자주 쓸 수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단지 내 손가락이 가는 대로 타이핑하는 중이다.


이런 나여서 그런지 실제 나의 지인들이 '편지를 쓰고 싶지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내 경험상 대개 자신의 마음을 볼 노력보단 쓰기도 전에 '어떻게 하면 편지를 잘 쓰지'라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만약 글을 쓰는 것이 어렵고 막막하다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평소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편인지, 스스로와 마주한 채 글을 쓸 때만큼만이라도 과감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지 나는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생각이란 걸 하고 마음이라는 게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글을 쓰지 못할리가 없다.


글쓰기가 어렵고 아무리 자리잡고 시간을 흘려보내도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면 '글'이라는 것에 대한 어떤 막연한 형식같은 고정관념에 손가락이 묶여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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