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이 안겨주는 희망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우월하고 고결하고 위대할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정말 개미와 다를 게 없을수도 있겠다. 개미가 중요한지 내가 더 중요한지 알 방법도 없고 그런 게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겠지.)
-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혼돈을 떠안겨주는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에서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세상에 대한 진실의 먼지 같은 일부분을 발견한 것에 불과한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다. 내 마음속에 깊이 박힌 문장 중 하나는 '자연에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그 문장이 나에 뇌구조에 깊숙하게 자리 잡혔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더불어 인간이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자인 프로그램을 가끔 다루는 나는 원을 그려놓고 마우스를 이용해 최대한으로 확대해서 아주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원의 정체를 들여다보곤 했다.
하필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연에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하루 중 얼마간은 그 생각에 잠겨있기도 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진실에 가깝고,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 곳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진리와도 같은 문장이라고 점점 나의 생각이 굳어졌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의 제목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걸까.
인간은 경계를 나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남자와 여자, 국내와 국외, 하늘과 땅, 강과 바다 등과 같은 것들을 나누고 가축과 반려동물을 나눈다. 그리고 학자들에 의해 각각의 병명이 나누어져 때로는 정확한 처방을 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실제 증상의 상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심적인 고통을 안겨주곤 한다. 현실에서 가장 자주 벌어지는 인간만의 경계 구분 활동이 있다. 바로 주변 사람에 대해 정의 내리고 판단하는 것. 그 어느 사소한 행동조차 본인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인간은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판단한다. 이것은 생존본능에 있어서 최적화된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 능력의 치명적인 단점은 수많은 오류를 안고 있다는 것과 스스로 본인의 판단을 의심하는 인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남의 생각을 담아낸 게 아닌 본인 스스로 어떤 생각 하나를 떠올려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매일 생각할수록 그것을 사실로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나의 사실이라고 평생토록 착각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간의 현주소이다. 내가 경험한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아무리 본인만의 철학, 관념, 고집이 뚜렷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의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주하면 언제든지 태세를 전환할 마음의 공간을 비워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본인의 삶을 살아내며 배워온 관념, 지식, 습관 등이 있지만 그런 것들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살이에 맞춰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책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서 감탄이 나온다는 사람과 내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명확히 갈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 책의 내용을 읽고 난 뒤 찬성이든 반대든 중립이든 어떤 의견도 난 반갑게 맞이하겠지만, 만약 내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과의 깊은 대화는 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지레짐작하는 것도 하나의 판단이며 오류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어떤 것을 말할 때 '무조건'이라는 말을 최대한 삼가고 심하면 확신까지는 할 때가 있어도 '확정'은 짓지 않는다.
어류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단지 책을 통해 읽은 내용에 불과하며 내가 그 글을 쓴 작가도 아닐뿐더러 그 작가를 실제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실화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내가 알 길이 없기도 하고 그 사실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독서는 책의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활동이 아니다. 책의 내용을 마음에 담아보고 그것에 대해 내면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을 통하여 색다른 시각을 얻거나,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재정의 한다거나, 통찰력을 날카롭게 다듬는 것이 독서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은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겸손한 마음을 굳혀주는 정말 보기 드문 명저라고 생각한다. 나의 지인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지만 아쉽게도 이 책을 깊이 읽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드물다.
여담이지만 이런 맥락과 비슷한 이유로 난 역사 속 위인들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 의해 세상에 새겨진 기록들을 보며 '인간이 저런 일도 할 수 있구나'에 대한 업적까지만이 역사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는 본인 스스로가 남긴 것도 아닌게 대부분이며, 스스로 남긴 역사가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자신의 일기를 읽고서 본인에 대해서 얼마나 파악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내가 말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힐거라고 생각한다. 난 상황에 따라서는 생각을 불편할 정도로 오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저 곧이곧대로 세상에 맞춰 아무 생각없이 휩쓸려 살면 나중에 후회할 일만 늘어날 것 같다.
자연에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심고 세상살이에 있어서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나를 상징하는 뿌리가 되어주기를 상상하며 독후감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