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라도 편하게 먹고 싶다
고기를 먹으면 사랑니와 어금니 사이에 깊게 끼기 때문에 어금니 칫솔이 없으면 빼기 힘들다. 치과 선생님은 입 안의 공간이 넓기 때문에 사랑니를 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덕분에 나의 사랑니는 모두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네 개의 사랑니 중 세 개의 사랑니에 항상 뭔가가 껴서 불편하다.
워터픽을 쓰면 다른 곳은 깔끔하게 제거되는데, 어금니와 사랑니 사이에 끼인 건 웬만해서는 잘 빠지지 않았다(내가 사용을 잘 못하는 걸 수도). 마음 같아선 모조리 다 빼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고기 먹을 일이 있으면 내빼진 않는다. 맛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기를 즐기는 것치곤, 고깃집에 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다.
고깃집에 가는 게 불편한 첫 번째 이유는 누군가는 고기를 구워야 하기 때문이다. 구성원 중 한 명 이상의 사람은 고기를 굽는 희생이 불가피하며, 어느 정도 사람들의 배가 찰 때까지는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대화에 참여도 잘하질 못한다.
요즘은 직원분이 옆에서 구워주는 곳도 많던데, 개인적으로 난 그게 더 불편하다. 그런 걸 서비스라며 즐기는 사람도 있던데, 난 생판 모르는 남이 바로 옆에 계속 서 있는 것 자체가 껄끄럽다. 차라리 내가 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는 뭔가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기도 신경 쓰인다. 직원이 자기가 구워주겠다며 가만히 내버려두라 해서 멍 때리고 있다가, 멀쩡한 고기가 탈 뻔한 적도 있었다. 고깃집에 가서 편하게 먹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다 익었다'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바짝 익혀 먹는 걸 좋아하고, 누구는 나처럼 살짝 덜 익혀 먹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게 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 중에 꼭 덜 익었다며 못 먹게 통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친구들이면 그냥 무시하고 내 갈 길 가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러면 그날은 고기 맛있게 먹긴 글렀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
고기를 바짝 익혀 먹을 때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최초의 몇 점 말고는 거의 다 타 버린다는 것이다. 불판으로부터 건져 올리지 않으면 99%는 과자처럼 딱딱해진다. 가장자리로 옮겨봤는데 큰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고 허겁지겁 앞접시로 나 먹을 만큼만 고기를 구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기가 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리라면, 대개 함부로 행동하기가 조심스러울 만큼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니까.
세 번째 이유는 별도의 식사다. 어릴 때부터 이해하기 힘든 게 하나 있었는데, 고기를 거의 다 먹고 난 후에 공깃밥과 된장찌개를 시키는 것이었다. 왜 항상 불판 위에 고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식사를 주문하는 걸까. 한때는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고깃집에서 일하는 직원분들 조차도 고기를 거의 다 먹을 때쯤이면 슬그머니 다가와,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아주 그 순서가 당연한 듯이 말이다.
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 밥과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 언제부터 다 죽어가는 텐션을 살리는 용도로, 끝나가는 식사의 여운을 연장코자 식사를 미루기 시작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난,
굽는 집은 웬만하면 잘 가지 않는다.
맛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좀 더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