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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26. 2024

우리 결혼식이 신문에 실릴 줄이야

동아일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다


어느 날,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제안 메일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아이폰 잠금화면에 떠 있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지만 평소 기다리던 '출간/기고'목적의 제안은 아니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지메일로 들어가서 도착한 메일을 읽어보니 동아일보의 한 기자님이었다. MZ 결혼 문화에 대해 취재 중이라고 하였다.


보아하니 브런치북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를 읽으신 듯했다. 결혼 준비 과정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며 인터뷰 요청을 하셨다. 돌잔치홀에서 결혼한 이유, 결혼식에 돈을 절약한 방법 등에 대한 것들이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살면서 기자에게 연락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재밌을 것 같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나 메일 혹은 대면 인터뷰도 가능하다고 하시던데 마음 같아선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신선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수도권과는 저~멀리 떨어진 지방에 살고 있는 내가 20분 정도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기자님 더러 나 사는 곳까지 내려오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날 맞춰 통화로 인터뷰하자며 마지못해 뜻을 전달했다.


기자님과의 통화 인터뷰는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 11시로 약속을 잡았다. 그즈음에 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11시가 다가오니 슬슬 미세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아이폰 시계가 11:00 정각이 되자마자 바로 벨소리가 울렸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전화하려고 기자님도 대기하신 듯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메일에 적힌 내용대로 결혼식과 관련된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셨다. 어떻게 돌잔치홀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는지, 비용은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등의 것들을 물어보셨다. 혼자서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비용적인 면에서는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사실 결혼식 준비의 90% 이상은 아내가 준비해서 당연한 일이었다). 대충은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내가 옆에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럼에도 대충 아는 선에서 최대한 기억을 살려서 둘러댔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말이 점점 많아진다는 걸 느꼈다. 기자님이 1을 질문하면 1에 더해 2,3까지 살을 붙여서 말하는 듯했다.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는 애써 말을 아끼느라 혼이 났다. 내가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가 싶었다. 사전에 20분 정도의 인터뷰라고 하셨는데 진짜 25분 정도로 인터뷰가 끝이 났다. 아마 내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계속 주절주절 쓸데없는 말을 했다면 30분은 훌쩍 넘어갔을 것이다.


생애 첫 기자님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진이 빠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집중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긴장을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쓰던 글을 더 이상 쓰기 힘들 정도로 온몸에 기운이 사라져서 짐을 챙기고 집으로 갔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그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매일 글을 쓰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그 사이 기자님에게 두 번 정도 문자 메시지를 통해 추가 질문을 받았다. 그 후엔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갈 거라며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셨고, 다음 주쯤에 동아일보에 실릴 거라고 알려주셨다. 다만 신문 기사에 실린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 감정이 크게 동요되진 않았다.


우리 결혼이야기는 6월 16일 자 주간 동아일보 기사에 실렸다. 그 기사를 처음 읽은 건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기자님이 다음 주쯤에 기사 나갈 예정이라고 알려준 게 불현듯 생각나서 동아일보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이미 일주일 전에 올라와 있었다. 대화를 꽤 많이 주고받은 것 같았는데 실제로 실린 내용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내용은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내와 난 둘 다 허례허식을 싫어했다. 하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데 비싼 돈 주고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꼭 해야만 하는 건가 싶었다. 어느 결혼식을 가도 절차가 비슷해서 지루하고 따분했다. 식권 받고 밥부터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난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청첩장을 받아도 축의금만 계좌로 이체하고 아예 발걸음은 하지 않는다(그마저도 대부분은 안 가지만).


사실 보통의 결혼식을 보다 보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행사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한 것치곤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였다. 결혼 당사자는 정신이 없고 하객들은 남일에 별 관심이 없다. 신랑 신부는 사회자가 맞절하라 하면 맞절하고, 선서하라 하면 선서하고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가끔 이벤트로 춤을 추거나 뮤지컬을 할 때도 있던데, 그런 걸 볼 때면 결혼식의 취지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웬만하면 예식장에서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지곤 했다. 근데 운이 좋게도 훗날에 만난 아내는 결혼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린 돌잔치홀에서 결혼했다.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돌잔치홀을 알아보니 여러모로 '적당한' 구석이 많았다. 예식장처럼 넓고 화려하진 않지만 하객 200분 정도는 모실 수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게 3시간이나 쓸 수 있었다. 홀 바깥엔 바로 뷔페가 있어서 장소를 이동할 필요도 없이 아무 때나 식사를 하기도 좋았다. 돌잔치홀에서 결혼한다 했을 때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던 부모님들도 끝나고 나니 엄청 편했다고 좋아하셨다.


원래부터 결혼의 본질은 '서로 잘 지내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서로 잘 지낼 수 있으려면 최소한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일만큼은 사전에 틀어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2년도 안 돼서 1억에 가까운 돈을 저축할 수 있었던 건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서인 것도 크다.


우리 부부처럼 돌잔치홀에서 결혼하고, 신혼부터 각방을 쓰고, 하오체로 대화를 주고받는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흔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보다 앞서 결혼한 친구들과 그리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점차 변하지 않을까 싶다.


좀 더 자연스러운 쪽으로.




신문기사 내용
2년 전 경북 구미 한 돌잔치홀에서 결혼식을 올린 정치호 씨(34)는 결혼식에 들인 비용이 500만 원밖에 안 된다. 정 씨는 “웨딩이라는 꼬리표를 떼자 대관료, 사진 촬영 비용 등 모든 게 저렴해졌다”며 “돌잔치홀은 일반 예식장이 아니라서 신랑, 신부가 원하는 대로 식순을 구성할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예비부부가 기존의 전형적인 결혼식만 고집하기보다 자기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당 신문 링크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40616/125450975/1




에세이 출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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