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투어 중 새삼 와닿게 된 현실
교보문고 매장에 내 책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가 깔렸단 소식을 듣고 나도 말로만 듣던 '서점투어'라는 것을 해봤다. 머나먼 서울까지 올라가야 했지만 그 정돈 감수할 만했다. 내가 사는 곳 구미엔 아쉽게도 KTX가 없어서 김천구미역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다음,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KTX가 없었다면 안 갔을지도 모른다).
구미로 넘어오기 전까지 항상 대구에만 살았었다. 여름이면 흔히들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그 뜨거운 동네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한여름에 서울땅을 밟아보니 서울도 만만치 않게 더웠다. 대구에 산다고 하면 그 뜨거운 곳에서 어떻게 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름이면 전국이 다 덥지 않나'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는데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대구가 물론 좀 더 뜨겁긴 하겠으나 여름은 그냥 어디든 다 덥다.
드라이한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시원하면서도 작가가 입을 법한 디자인의 상의를 입었다. 바지는 아내가 사 준 유니클로 츄리닝을 입고 많이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게 나이키 러닝화를 신었다. 서울 정도까지 가면 꽤나 차려입고 갈 만했지만, 이번 서울 상경의 목적은 서점투어 하나였고 사진은 상체만 찍으면 됐기에 나름 자중하고자 했다. 왠지 그런 내 모습에서 나이듦이 느껴졌다.
이동하는 동안 글 한 편을 쓰고 폰게임을 하다 보니 금세 서울역에 다다랐다. 서울역 홀에 들어가서는 미리 찾아둔 물품보관소 앞으로 갔다. 주말엔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하였는데, 내가 간 날은 화요일이어서 다행히 물품보관소에 자리가 많았다. 그곳에 노트북을 맡기고 스타벅스 가방 하나만 가지고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향한 곳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이었다. 미리 조사하는 과정에서 오픈 시간이 9시 30분이길래 그전에 도착하게끔 기차시간을 조정했었다. 도착하니 문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희한하게도 어린이 한 명의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막 나도 아빠가 된 참이라 나중에 나도 우리 아들 손 잡고 교보문고 오픈런을 하러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뒤편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오픈 시간보다 1분쯤 지나고 나니 정문이 열렸다. 기다리는 동안 내 책이 어딨는지는 미리 찾아 둔 탓에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 아들을 처음 봤을 때처럼 무덤덤했다. 신기하긴 했으나 막 기쁘거나 하진 않았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겠으나 기분에 아무런 탈이 없었다.
의외였던 건 생각보다 잘 보이는 평대에 내 책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출판사 대표님을 통해 평대에 깔려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럼에도 나 같은 무명작가의 책이 그렇게 잘 보이는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조금은 더 구석진 곳에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책 사진을 찍고, 책과 함께 셀카를 찍고, 매장 내부 사진도 좀 더 찍은 후에 다음 교보문고로 착착 옮겨갔다. 교보문고 잠실점, 강남점, 영등포점까지 순차적으로 들렀다.
방문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교보문고는 하나 같이 전부 커다란 빌딩 안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같이 처음 발걸음 하는 사람은 꽤나 찾기가 힘들었다. 매장마다 코앞까지 와서는 항상 교보문고 매장을 찾지 못해 헤매곤 했었다.
여하튼 다른 교보문고에서도 내 책은 '신간 에세이'코너 평대에 잘 모셔져 있었다. 조금 더 안쪽도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쪽에다가 잘 놓여 있었다. 처음 들른 곳과 마찬가지로 매장 사진, 내 책 사진, 책과 함께 찍은 셀카 순으로 찍고는 서둘러 이동했다. 집으로 가는 기차 시간에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만한 여지는 많이 없었다.
그렇게 교보문고를 돌다 보니 문득 막연한 감정이 밀려왔다. 처음엔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실제 내 책이 깔려 있는 장면을 보다 보니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와, 근데 책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수많은 책들 중에 내 책을 사 가는 사람이 있다면 거의 기적에 가깝겠다.'
'내가 만약 책을 사러 오는 입장이라면 과연 내 책을 집어 갈 만한 확률이 얼마나 될까'
뭐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머릿속을 꿰찼다.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거 작가의 삶을 꿈꾸면서부터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책을 내더라도 잘 안 팔린다는 경험담을 수없이 읽었고, 내 책도 분명 그러리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막상 내 책을 구경하고자 서점투어를 하다 보니 좀 더 그 암울한 현실이 체감되는 듯했다.
내 책이 보기 좋은 곳에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팔리지 않을 것 같단 예감은 왠지 어그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에 힘이 좀 빠지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책 한 권 내고 글쓰기를 그만둘 것도 아니었으며, 내 꿈은 출간이 아니었다.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일상이며, 그런 일상을 최대한 오래도록 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 책이 안 팔릴 것 같단 예감에도 별다른 마음의 스크래치는 남지 않았다. 그런 현실을 마주해도 난 무덤덤했고, 무탈했고, 기분에 아무런 탈이 없었다.
난 그런 내가 썩 나쁘지 않다.
그리고 글쓰기,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