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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상태가 이리 심각할 줄 몰랐지

ep 21. 출간의 길, 산 넘어 산이로다

by 달보

160곳이 넘는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결과 총 다섯 군데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고, 그중 한 출판사 대표님과 오프라인 미팅을 가진 후에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투고에 대한 회신을 줄 만한 출판사도 없을 터였고 이미 출간 계약서도 썼으니, 약속대로 최종 원고를 한 달 안에 넘겨주기만 하면 됐었습니다.


큰 산 하나를 넘었다는 생각에 좀 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 제가 얼마나 게으르고 또 한없이 퍼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왠지 하루라도 미뤘다가는 그게 이틀, 삼일이 되고 점차 늘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원고 수정은 미팅한 다음 날 새벽부터 바로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남는 시간에 하는 거라곤 글쓰기밖에 없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업에 착수한 첫날부터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출판사에 투고했던 원고를 다시 읽어 보니까 새삼 글이 너무도 형편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분명 퇴고를 수없이 거친 후에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브런치북으로 연재하고 출판사에 투고도 한 거였습니다. 근데 그 사이 시간이 좀 흘렀다고 이리 달라 보일 수도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하물며 이만큼이나 어설픈 원고로 투고했던 게 부끄럽고, 이렇게도 미흡한 원고로 출간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원고는 죄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저였습니다.




1년 동안 글쓰기 삼매경에 빠져 있으면서 항상 반복되던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쓴 글을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일이었습니다. 맞춤법, 문맥, 반복되는 단어, 앞뒤 연결이 어색한 문장 등이 희한하게 글 쓸 때는 안 보이다가 항상 다 쓴 후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썼던 글을 다시 읽는 게 두렵습니다.


물론 전에 썼던 글이 이상해 보이는 게 안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건 그만큼 제가 성장해서 보는 눈이 달라진 거라 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좋은 기분과 찜찜한 기분이 49:51 정도의 비율로 들곤 했습니다. 그마저도 글을 계속 썼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글쓰기를 게을리했다면 어쩌다 한 번 쓴 글 가지고 잘 썼다고 자화자찬하며 우쭐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글은 쓰면 쓸수록 더 많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하튼 당장 어제 쓴 글도 오늘 다시 보면 고칠 부분이 여럿 보이기 마련인데, 무려 한 달 전에 쓴 글을 펼쳐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한 달 안에 A4 20~3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채우고, A4 70~8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성에 차게끔 고칠 수 있을지였습니다. 한숨 나올 정도로 막막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습니다.


일단은, 무작정 쓰기 시작했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우리 부부가 물건을 정리하는 첫 번째 이유는 마음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서다. 거실에 달랑 티비와 소파 하나 있는 게 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와 아내는 그런 심심한 공간에서 되려 안온함을 만끽한다. 둘 다 독서가 취미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주변에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으면 괜히 책 읽거나 대화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리고 꼭 뭘 버리지 않더라도 주변을 정리하기만 해도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경험상 '비움'은 '충족감'을 대가로 돌려주는 것 같았다.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어쩌다 미니멀 라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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