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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ug 09. 2024

생애 첫 출간 미팅 경험담

ep 20. 그리고 뜻밖의 난관


출간 미팅하던 날 출판사 대표님을 뵙자마자 적잖이 당황했던 순간을 돌이켜 보면, 최소한 34살의 저보다는 연장자일 거라고 무의식적으로나마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컨텐츠가 좋아 보인다며 오프라인 미팅을 제안했던 대표님은 저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배팅을 하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저보다 어린 쪽에 걸 수 있을 만한 정도였습니다. 출판사 홈페이지와 SNS가 다른 곳에 비해 유독 트렌디한 느낌을 물씬 풍겼던 건 괜히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건 그분의 명함이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슥삭거리고 싶어지는 질감에 더해 둥글게 깎인 모서리와 보편적이지 않은 두께감이 돋보이는, 손에 밸 일만큼은 결코 없을 법한 그런 명함이었습니다. '이 모양 그대로 나중에 작가 명함 하나 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디자인이 잘 빠진 듯했습니다. 보통 명함을 받고 나면 예의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직함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한 번씩 흘겨보곤 했는데, 그 명함은 미팅 중에 일부러 내려다볼 만큼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단 책 만드는 것과 명함은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훗날 만들어질 제 책도 왠지 명함만큼이나 잘 빠질 것 같은 마음에 흥이 살짝 올랐습니다.


본격적인 미팅을 하면서 대표님은 출판사의 간략한 소개와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 출간 이력이 없는 무명작가가 궁금해할 법한 것들을 질문했습니다. 원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서는 평소 자신이 생각하던 것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시던데, 듣다 보니 전반적으로 결혼관이 저와 많이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를 쓰게 된 최초의 계기는 돌잔치홀에서 결혼식을 치른 경험을 글로 옮겨 적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대표님도 돌잔치홀에서의 결혼식을 종종 떠올렸다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만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제 글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았습니다.




미팅은 약 두 시간가량 이어졌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것치고는 그리 대단한 이야기를 나눈 건 또 아니었습니다. 대표님은 제 원고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미팅을 제안한 것이고, 저 또한 출간 의사가 있었기에 머나먼 서울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출간과 관련된 것들은 사실 만나기도 전부터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로 그날의 미팅은 절차를 밟기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출간 계약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쓸 수도 있었으나, 처음 계약하는 것이니만큼 하루 정도는 여유를 갖고 꼼꼼히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메일로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원고는 한 달 뒤에 인도하기로 했습니다. 실은 제가 그리 약속해 놓고도 그 안에 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부족한 분량을 채우는 데는 넉넉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퇴고였습니다. 경험상 이전에 썼던 글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보면, 싹 다 뜯어고치고 싶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니 살짝 불안했습니다. 안 그래도 미팅한 날은 원고를 다 쓴 뒤 한 달이 지난 때여서 더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80% 이상 완성된 원고를 두 달 뒤에나 넘기는 건 너무 늘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한 달 안에 원고를 넘긴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여하튼 미팅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더 이상 들어볼 것도 물어볼 만한 것도 없었지만, 괜스레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픈 아쉬움이 잔존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는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그 사이 새로운 출간 제안이 또 한 번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읽어보니 사정상 오프라인 배본이나 마케팅 등에 주력하는 도서로 진행하긴 어렵고, 주문이 있을 때마다 인쇄소에서 책을 찍거나 전자책 판매를 우선적으로 진행해 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미팅했던 대표님과 함께 작업하기로 마음을 99% 굳힌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고자 했던 이유가 제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니까 종이책을 만들어 서점에 내놓는다거나 마케팅의 도움을 받기 위함도 있었기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후 출간 계약서가 첨부된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열어보니 검색을 통해 미리 훑어봤던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팅할 때 들었던 내용과 상이한 부분이 없는지만 꼼꼼히 확인한 후에 서명하고 스캔을 떠서 다음 날 바로 보냈습니다. 전자책 출간을 지양하는 점만 아니었으면 계약수도 있었던 출판사에는 정중한 거절의 메일을 보낸 후였습니다. 남은 건 한 달 안에 완성된 원고를 넘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넉넉한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새도 없이 바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열었더니,

심각한 문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한계가 명확한 인간의 인지능력과 제한된 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감안하면 그리 많은 물건도 실상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한다. 욕망은 한도 끝도 없이 자라는데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막연한 공허함과 쓰디쓴 절망감을 안겨줄 뿐이니까 말이다. 만약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면 마음 어딘가에 메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는 걸로 해석해 볼만하다.
 - 책 내용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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