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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ep 22. 브런치라는 양날의 검

by 달보


저는 새벽에 일어났다가 우연히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면서부터는 글쓰기를 인생의 과업쯤으로 여겼고 매일 빠짐없이 글을 써왔습니다. 대개 글쓰기를 처음 하면 쓰고 싶어도 양껏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 뭔가를 끄적이는 건 처음부터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으면 내용이 중구난방일지언정 뭐라도 써낼 수는 있었습니다. 글쓰기가 적성에 맞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짚어볼 만한 건 10년 넘게 책을 끼고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글 쓰는 데 있어서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점입니다.


전 다 좋은데 끈기가 없어서 항상 문제였습니다. 뭘 해도 매번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내놓을 만한 성과가 인생에 없었습니다. 근데 글쓰기는 아니었습니다. 글쓰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해 온 유일한 활동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물론 슬럼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뭐 때문에 얼마만큼이나 힘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브런치에 매일 한 편씩 글을 발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건 평소 쓰는 수많은 글 중 일부를 조금씩 내보이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맘 같아선 쓰는 족족 공개하고 싶었으나 그럼 제 브런치 알람을 설정하신 분들이 피로감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저도 그러니까요). 가뜩이나 구독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브런치에서 애써 구독 취소를 불러올 만한 짓을 감행할 필요는 없었으니 완급조절은 필요했습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여러 독자분들과 소통하다 보면 전업 작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 자신과 수없이 부딪히며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필력이 실제론 형편없다는 것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내면에 자리 잡은 오만함과 자만심이 조금씩 씻겨나가면서 필체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여하튼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출근 전 브런치에 글 한 편 올리는 건 일상의 루틴이자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필력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려 준 그 루틴이 도리어 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출간 계약을 하고 나서 모든 시간을 원고 수정에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브런치에 글을 올린답시고 설쳐댔으니 말입니다. 정황상 원고부터 마무리 한 다음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전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중요하지만 심적 부담이 월등히 높은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엉뚱하게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평소의 패턴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집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에 올릴 글 쓰느라 원고 수정은 손도 대지 못하는 날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뒤늦게 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건 어느덧 습관을 넘어 집착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원고 수정이 끝날 때까지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으면 됐었지만, 그 쉽고 간단한 결단을 내리기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그리 해달라며 간곡히 요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것만이 꼭 글쓰기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브런치가 아니라도 어차피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나 했을 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강박증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다만 결단 내리는 게 쉽지 않았을 뿐이지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브런치 연재를 중단한다고 해서 잘못될 건 없지만 원고 수정을 게을리했다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모아서 원고 다듬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게 당연했습니다. 인생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를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무려 650편이 넘는 글을 브런치에 발행하며 글쓰기에 미쳐 살았던 저는 겨우 브런치 연재를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별것도 아닌 일 같고 호들갑 떤다고 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만큼은 몸에 밴 습관을 떨쳐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귀한 경험이자, 한 획을 그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브런치는 저만의 연구실이자, 무대이며, 쉼터이기도 한 꿈의 공간이었으니까요.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2인3각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도 모자랄 판에, 네가 할 일 내가 할 일이 별도로 정해져 있단 마음을 가져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예컨대 설거지할 게 눈에 보이는데도 '어젠 내가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무심코 내버려 두는 건, 일감과 동시에 갈라지는 관계를 방치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집안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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