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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14. 2024

교대 근무에서 9 to 6 사무직으로

출근길 24시간 설렁탕 집을 지나며 든 생각


회사로 가는 출근길에 보면 24시간 설렁탕집이 하나 있다. 보통 8시 45분쯤에 그곳을 지나치는데, 그 안에서 아침 7시 혹은 8시에 야간 근무를 마치고 국밥 한 그릇에 소주를 곁들이는 듯한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혹은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감히 그렇게 추측할 수 있는 건 인근에 교대로 돌아가며 일하는 공장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 공장들 중 한 군데에서 교대근무를 했었다. 그리고 야간 일을 마치면 같은 팀 동료들과 이른 아침에도 문이 열려 있는 식당을 기웃거리곤 했다.


오늘도 출근길에 모닝국밥을 때리고(?) 있는 교대근무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삼 옛날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2년 전의 일들이. 4,5일마다 돌아가며 밤낮이 바뀌고 퇴근하면 집이 아니라 술을 파는 식당으로 가는 패턴으로 일상을 녹이던 시절. 돈은 지금보다 많이 벌었으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던 시절.


교대 근무가 힘들다고 하지만 그게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었다. 실은 나도 교대 근무가 적성에 아예 맞지 않는 건 아니었다. 7시 출근 15시 퇴근, 15시 출근 23시 퇴근, 23시 출근 7시 퇴근하는 패턴을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해도 잠은 잘 잤다. 주말이나 빨간 날에 쉬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불만도 딱히 없었다. 그만큼 돈이 더 들어왔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사회생활 시작할 당시부터 난 빨간 날에 옳게 쉬어본 적이 없었기에 애초에 그런 건 기대도 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단지 교대근무를 계속하기엔 퇴사하면 남는 게 돈밖에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을 뿐이다. 그게 날 사무직으로 이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예전에 공장에서 일할 때 나보다 5,6년 정도 더 오래 일한 선배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었다.


"선배는 2교대, 3교대, 4교대 중에서 뭐가 가장 할 만했어요?"


"주간 근무."


의외의 대답이었다. 내 질문을 정확히 듣고 말을 한 건지,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한 답을 내놓은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생각지 못한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는 내게 그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가능하면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게 제일 좋지."


그 말을 들었던 그때 그 순간에는 '그렇다는 선배님은 왜 여기서 4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긴 평생 할 거라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교대근무를 서른 살 넘어서야 시작하게 된 나처럼 그도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 하고 대충 넘겼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 당시엔 교대근무가 어중간한 사무직에 종사하는 것보단 조금 더 나은 줄 알았다. 제대로 된 사무직을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어느새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며 빨간 날 공휴일 다 쉬는 사무실에서 2년쯤 일하다 보니, 예전 그 선배가 왜 뜬금없이 '어떤 근무가 가장 할 만했냐'는 질문에 '주간 근무'라고 대답했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공장에서 교대 근무를 하다가 평범한 사무직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레 비교가 되면서 차이점이 뚜렷해졌다. 적어도 현재의 나로서는 교대근무보다 이런 사무직이 훨씬 더 맞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월급이 줄어든 만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이라는 과녁에 8,9점쯤 위치한 내 나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저축일 수도 있겠고, 누구는 새 집 장만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시간을 버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내 개인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 반납하는 대가로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받아보니 그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인데 비해 시간은, 또 젊음은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은 젊을 때 해야만 했다. 젊을수록 일찍 저축하는 것도 좋지만, 난 나 스스로가 금전적인 보상이 제법 돌아올 만큼의 재주를 겸비하는 일이 멀리 보면 더 나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비록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정의 행복에 금이 갈 법한 상황을 초래하면 아니 되겠지만, 노년에 넘어지는 것보다는 지금 넘어져 보는 게 여러 방면에서 이로웠다. 하물며 한창 젊을 때인 지금은 부딪히고 상처가 나도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경제적 혹은 신체적 타격을 입는다면 어지간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고서야 자가 회복은 힘들 게 뻔했다. 그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주 5일 근무에 빨간 날 쉬는 삶을 살아보니 확실히 여유가 많았다. 밤낮으로 일하는 곳에서 주간에만 일하는 곳으로 왔더니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대폭 늘어났다. 특히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신혼 초기에 아내와 함께 했던 행복한 나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시간을 벌기 위해 과감히 이직한 건, 잘한 일을 초월하여 천만다행인 일이라고까지 여겨진다.


더불어 이직을 하자마자 글쓰기라는 인생의 과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행운 중에 행운이었다. 뭐라도 좀 해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이직은 했다만 정작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단 이유로 멍만 때렸다면 황금 같은 시간만 하릴없이 흘려보냈을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성실하다고 하지만, 난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알고 있다(그들은 내가 게으르다며 고백해도 믿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빚만큼은 지지 말자'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그에 맞게 살아온 것도 참 다행이었다. 월급도 연봉으로 따지면 거의 반토막이 나버렸지만, 체감상으로는 그렇게 적어진 것 같지도 않게 느껴지는 건 갚아야 할 빚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뭔가 월급을 많이 벌 때보다 돈이 더 잘 모이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만약 위의 두 가지 요소가 충족되지 않았었다면 아마 지금쯤 늘어난 시간만큼 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매달 빚 갚는데 모조리 빠져나가는 통장을 바라보며 다시 돈을 좀 더 많이 주는 곳을 물색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 24시간 설렁탕 집을 지나며 옛 동료 같은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했더랬다.


다들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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