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0. 난 아직 나를 잘 모른다
내가 팀장님에게 불만을 품기 시작한 건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불필요한 야근을 시키는 것. 내용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업무지시 하는 것. 한 치의 쉼도 없이 무리하게 일하는 것 등.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완화가 되었다. 야근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더니 야근은 거의 사라졌다. 여전히 답답하게 일은 시키지만 그 빈도수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쉬지도 않고 일하는 건 팀장님이 혼자 그렇게 하고 있으면 괜히 내가 눈치 보여서 말리는 것뿐, 팀장님은 되려 쉬엄쉬엄 하라며 내게 말했다. 본인 페이스를 따라오라며 강요한 적도 눈치를 준 적도 없었다. 내가 팀장님을 싫어하는 것치고 팀장님은 곱씹어볼수록 내게 그다지 피해를 주지 않는 상사였다.
그럼에도 팀장님에 대한 불만은 겹겹이 쌓여만 가서 사람이 싫어지기까지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자라남을 느꼈다. 팀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을 더듬는 것, 뷔페 가서 밥 먹을 때 '덜 펐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식전 기도로 올리고 메뉴와 관계없이 매번 쌈을 싸 먹는 것,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만큼 중구난방으로 널브러진 컴퓨터 바탕화면의 파일 및 폴더들, 듣기만 해도 구시대적인 그만의 가치관 그리고 사고방식, 청소기로 바닥 미는 게 전부인 듯한 사무실 겸 숙소의 청결 상태, 전깃불 끄고 코드 뽑는 건 예민하게 구는데 비해 식물 광합성을 위한답시고 24시간 주방 불을 켜고 있거나 세탁기는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이 쓰는 등의 앞뒤가 맞지 않는 근검절약. 그 외적으로도 팀장님과 얽힌 것이라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처음엔 팀장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게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밑도 끝도 없이 얼토당토 안 한 불만을 품어대는 나 자신이 불편해졌다. 작은 불만들이 일어날 때면 전혀 관리하거나 통제할 생각은 하지 않아서인지,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짜릿한 자극을 일으켜서인진 몰라도 불만은 새끼 치듯 불어나 어느새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틈만 나면 팀장님을 눈에 담은 채 안 좋은 생각들에 잠식당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난 팀장님을 직장동료가 아니라 단지 부정적 사고를 유발하기 위한 땔감으로 쓰는 건 아니었을까.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아도 팀장님은 나무라지 않았다. 시킨 대로 일하지 않으면 팀장님은 성질부리긴 했지만 그 강도가 매우 빈약해서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다. 성급하게 생각해서 본인이 실수해 놓고 나에게 탓을 물은 적이 적지 않았지만 본인 실수라는 게 드러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과하는 팀장님이었다. 그런 팀장님 앞에서 난 잘해줄수록 오히려 떼만 더 쓰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내가 만약 팀장이었다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는 부하직원을 가만히 놔둘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팀장이었다면 부하직원에게 섣불리 화를 내자마자 내 잘못이라는 게 드러났을 때 부끄럼을 무릅쓰고 칼같이 사과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난 부하직원의 안위보다 내 자존심을 더 챙기려고 들지 않았을까. 그래놓고 뒤에 가서는 잔뜩 후회하겠지만서도.
책에서 읽은 대로 평소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쩌다 이만큼의 불만을 품게 된 걸까. 부정적인 감정이 꽤나 자극적이어서 중독되기 쉽다곤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얼핏 보면 남몰래 상사 호박씨를 까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나를 잠식한 부정적인 기운의 영향력이 범상치가 않았다. 팀장님이 딱히 뭘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못된 마음이 드는 게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만 같았다. 그 좋지 못한 에너지를 제때 해소하지 못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큰 피해를 입을 것만 같았다.
팀장님에 대한 글을 써볼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팀장님 글을 시원하게 써 버리고 싶었다. 팀장님과 관련된 글을 쓰면 책 한 권도 써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희한하고 엽기적인 에피소드가 많았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 좋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을 무시하거나 욕하는 그런 글을 가끔 읽을 때면 나 또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서사를 쌓는 용도로 쓰는 건 괜찮다. 하지만 단순하게 남 욕만 하는 글은 써서 좋을 게 없었다.
팀장님만 보면 날뛰는 내 안의 악마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퇴사이긴 했다. 그 악마는 팀장님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먹고살기 때문에 팀장님과 멀어지면 알아서 말라죽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일든지 말든지 어쨌든 생계는 유지해야 했다.
평소 마음가짐을 올곧게 잘 유지한다고 자부하는 나였는데 팀장님이 내 일상에 나타남으로써 내가 얼마나 못된 마음에 쉽게 넘어가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건 참, 되도록이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불편했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난 아직 나를 잘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