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어쩌면 싸가지가 원래부터 없었던 걸지도
난 성향이 온순한 부모님의 DNA를 물려받아서인지 딱히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자랐다. 갓난아기 때도 많이 울지 않고 잠만 잤다고 들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받아쓰기할 때마다 100점을 받았고 무슨 대회라도 나가면 못해도 장려상이라도 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초중고 개근은 기본이었다. 사춘기는 내게 오다가 자빠지기라도 한 건지 딱히 질풍노도의 시기랄 것도 없이 청소년기도 조용히 보냈다. 따돌림을 당한 적도 없었다. 평생 친구라고 할 만한 놈들이 없었을 뿐이지 나름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은 언제나 있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수학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해 공부와 담쌓고 산 것 정도.
근데 거기에 뭔가가 있었다.
공부를 포기한 것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난 "넌 뭘 해도 잘하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일단 날 낳아주신 부모님부터가 그랬고 집안 어른들이 그랬다. 훗날 나이가 들어서도 희한하게 나를 스치는 인연들은 하나 같이 '미래가 창창한 인재'가 함의된 말들을 건넸다. 처음엔 그런 말들이 모두 근거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이 내게 하는 말은 대부분이 그렇다 할 근거 없이 툭 내뱉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물론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유일하고도 공통된 근거가 딱 한 가지 있긴 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나도 모르게 풍기고 있는 나만의 기운에서 뭔가를 포착했으니 "넌 뭘 해도 잘하겠다."라는 말을 한 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찰나의 순간 스쳐간 느낌이 그들이 내리는 판가름의 본질이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내 이미지를 멋대로 상정하곤 했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넌 공부 잘했잖아."
"나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했는데?"
"에이~ 그래도 잘했잖아."
날 좋게 보는 사람일수록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닌 걸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에 대해 이미 정의 내린 본인들의 생각만 철저히 안고 갈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약간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럼에도 날 좋게 봐준다니까 딱히 문제 삼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무조건 나를 좋게만 보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 건지 한 번쯤은 충분히 사유하면 좋았을 법했다. 한편으론 억울해하면서도 은근 남들의 인정을 즐기는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했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애석하게도 그땐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난 잘한다는 말이 익숙했다. 뭘 못한다는 말은 들은 적도 별로 없거니와 그런 혹평을 듣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난 오직 칭찬 들을 수 있는 것들만 골라냈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것만 도전했다. 처음엔 잘 해내다가도 난관에 부딪히면 금세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은 속내가 깔려 있었다. 게을러서, 의지가 박약해서,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죄다 핑계일지도 몰랐다. 살아생전 일삼았던 모든 회피의 본체는 사람들의 인정을 계속해서 받으려는 욕심인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뭘 해도 잘했던 것치곤 유의미한 성과를 낸 적이 거의 없는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오랫동안 날 옭아매던 족쇄로부터 해방이라도 되는 듯이.
근데 그렇게까지 인정받아서 어따 쓰겠다고 난 그 난리를 피운 걸까.
사회생활 시작한 이래로 만난 사수들에게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봤다.
"야이 새끼야. 생각 좀 하고 일해."
"시발놈이 미쳤나."
"정신을 어따 팔고 다니냐."
"아무리 봐도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은데 꼭 계속 이 일을 해야겠나?"
"진짜 대가리 존나 나쁘네."
그에 비하면 우리 팀장님의 잔소리는 아주 연약(?)했다. 그동안 세월이 흐른 만큼 사회 분위기가 변한 탓도 한몫하지만 팀장님 자체가 쓴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그런데도 난 팀장님이 싫은 소리를 하면 바로 인상을 찌푸리고 따져 물을 거리를 찾으면서 저항할 태세를 갖췄다. 팀장님이 뭔가가 잘못됐다며 말을 걸어오면 상황 파악을 하지도 않고 일단 잘못한 게 없다는 식으로 대들었다. 그러다 내 실수에 의한 일이라는 게 밝혀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죄송하단 말은커녕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난 끝까지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꼭 그래야만 했다.
팀장님은 내게 업무지시를 하는 입장이기에 일을 시키는 건 당연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것만 아니면 얼마든지 일을 시켜도 아무 관계없었다. 그럼에도 "미안한데 이것 좀 해줄래?"라든지, "아까 봤던 도면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 미안미안."이라는 식으로 항상 미안하단 말을 덧붙였다. 반면에 난 팀장님 앞에서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난 팀장님에게 단 한 번도 죄송하단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팀장님이 정해준 날짜 안에 일을 마감하지 못했을 때도, 팀장님이 중요하니까 꼼꼼히 확인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던 부분을 놓쳤을 때도, 출근 시간보다 2~3분 늦게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도 난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죄송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내뱉기 어려운 말 중 하나였다. 난 항상 죄송하단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뭐든지 잘 해내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분명 팀장님에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면접 때 야근이 없다길래 연봉이 반토막 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이직했건만, 첫 출근날부터 야근을 시키는 팀장님에게 원망이 쌓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팀장님에게 속은 것치고는 규격 이상으로 난 싸가지 없는 부하직원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원래부터 싸가지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더불어 전형적인 강약약강,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해지는 비겁한 놈인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쌍욕을 먹어도 인상 쓰고 대들기는커녕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용서를 구하던 예전에 비해 팀장님 앞에선 잘난 척, 아는 척, 당당한 척하기 바빴다.
난 내가 싸가지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주변에도 날더러 그런 평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리저리 쿡쿡 찔러도 별 반응도 않고 눈웃음만 살랑 치는 무딘 곰 같은 게 내 이미지였다. 근데 그런 내가 스스로 싸가지가 없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뭔가가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밟거나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는 걸 뜻했다. 곱씹어볼수록 팀장님이 내게 피해를 준 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난 필요 이상으로 팀장님에게 모질게 굴었다. 마치 부하직원이 아니라 업무 주도권을 강하게 쥐고 있는 외주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시 난 팀장님을 상사로서가 아니라 다른 데선 취하기 힘든 우월감과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한 건 아니었을까.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생각하여 팀장님에게 한 행동들이 단지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만약 아주 어긋난 추론이 아니라면 소위 업보(業報)가 쌓이고 있을 터였으니까. 불교를 포함하여 믿는 종교는 없으나 '뿌린 만큼 돌아온다'는 세간의 진실은 몸소 느낀 바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