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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04. 2024

그럴 거면 소개를 받지나 말지

letter 1


반나절 만에 겨우 카톡 한 번 보낼 거면 애초에 남자 소개를 왜 받은 거지. 라는 생각에 네 번호를 지웠어. 빨라도 6시간 만에, 그것도 단답형으로 답장 오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할 수가 없더라. 바빠서 그랬다고? 안 믿었지. 여자 소개를 해달라고 한 건 나였지만 그렇게까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싶진 않았거든. 내가 모솔도 아니고 말이야.


번호를 지우기 전에 보낸 카톡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 리가 없는 넌 아무렇지도 않게 몇 시간 뒤에 답장을 보냈어. 그놈의 바빠서 이제 연락한다는 말을 필두로. 원래는 읽씹 하려고 했지. 근데 괜히 심술궂은 마음이 들더라. 혹은 일순간 용기가 일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대여섯 시간 만에 겨우 답장 한 번 올까 말까 한 사람에게 밑밥도 깔지 않고 당장 내일 보잔 말을 꺼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거절당할 확률이 99%였으니까. 느려터진 답장 속도가 이미 일종의 대답인 셈이기도 하고. 뭐,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흔쾌히 만난다고 할 줄이야. 그렇다고 막 좋진 않더라. 되려 두렵기나 했지. 나한테 관심도 없는 여자한테 한 번만 만나달라고 졸라서 겨우 만남이 성사된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렇게 됐으니 민영이한테 부랴부랴 연락했어. 니 번호를 다시 알려달라고. 이유를 물어보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좀 웃기더라. 아니 조금 슬펐던 거 같기도 해. '웃프다'라는 말이 언제 쓰이는 표현일까 궁금했는데 바로 그럴 때인가 봐.


니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뻔할 거라 생각했어. 조용하거나. 무뚝뚝하거나. 차갑거나. 도도한 척하거나. 혹은 자기가 예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분에 차지 않는 사람들을 냉대하거나. 뭐가 됐든 좋은 쪽으로는 생각할 수가 없더라.


답장하는 모양새에서 니가 보이는 거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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