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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11. 2024

뭐라도 좀 해야겠더라

letter 3


연애를 못 해본 것도 아닌데 넌 정말이지 예측이 안 되네. 물론 소개팅은 니가 처음이긴 해. 근데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런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처음 만난 날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많이 보낸 건 아니지만 넌 만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잖아. 뭐, 내가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원래부터 잘 웃는 것처럼 보이긴 했어도. 그리고 헤어질 때 ‘연락할게요~’라는 입모양을 지어 보이고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던 니 모습을 보고서는 웬만하면 두 번째 만남까지는 수월하게 갈 줄 알았단 말이지. 하. 근데 사람 만나는 게 이리도 힘들 줄이야.


마음 같아선 당장 내일도 보고 싶은데 넌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약속이 잡혀 있더라. 너의 미소와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약속이 많을 만도 하다고 생각해(쉽게 거짓말할 사람 같지도 않았고). 그래도 어떻게 물어보는 날마다 약속 있다며 튕길 수가 있냐고. 그리고 두세 번이나 만나자는 사람에게 퇴짜를 놨으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만날 수 있는 날을 말해줄 법도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쉬운 쪽은 내쪽인 거 같으니 넘어갈 수밖에. 분명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했던 근거 부실한 추측은 약속 있단 말을 수차례 듣고 나니까 충분히 아닐 수도 있겠다 싶더라.


그나마 전보다 나아진 점이 한 가지 있긴 해. 니 답장 속도. 빨라야 겨우 6시간 만에 한 번 답장이 오던 처음에 비하면 그래도 이젠 2,3시간 만에 한 번씩 오니까 가히 두 배나 빨라진 셈이지. 답장 늦는 게 바빠서 그랬단 거 처음부터 믿진 않았지만 역시나. 비록 2,3시간이 만족스러운 텀은 아님에도 흡족스러웠어. 그 짧은 시간 동안 네게 길들여지기라도 한 것처럼. 더군다나 거듭해서 뺀찌 맞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점점 짧아지는 답장 속도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두 번째 만남이 겨우 성사가 됐어도 관계가 흐지부지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어. 내가 겉으로 유별나게 빼어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넌 내가 싫진 않지만 딱 그 정도까지인 것 같거든. 우리가 아무리 연애를 전제 조건으로 만난 사이이긴 해도 두 번째 만남에서 고백하는 건 무리수일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만나 겨우 커피 한 잔 하고 한참 뒤에 만나서는 느닷없이 사귀자고 한다면 나 같아도 당황스러울 테니.


근데 그렇다고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 아니, 그러긴 싫었지. 물론 널 잠깐 본 게 전부인 만큼 니가 아직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 그래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든 이상 뭐라도 해야겠더라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해 봤어. 그리고 어렵지 않게 편지를 떠올렸지. 널 처음 본 날부터 어떤 심정으로 지냈는지를 고스란히 옮겨 적은 종이를 건네면, 최소한 스쳐갈 법했던 인연이 못해도 손뼉 한 번 정도는 치고 지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진심을 전하는 데는 편지만 한 게 없기도 하고.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으면서도 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편지를 전할 수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설사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나중에 후회가 덜 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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