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엮어낸 3개월의 기록
구미 모임 그로스맨에서 진행된 2024 가을시즌 글루틴클럽 3개월 간의 여정이 끝났다. 비록 참여자는 많이 없었지만, 소수 정예 느낌으로 글쓰기에 진심인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구미역 근처에 있는 '글빚공간'이라는 곳에서 열렸다. 지정된 글쓰기책의 소감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해, 에세이 미션 브리핑, 20분 글쓰기, 브런치 작가 합격 팁 공유 등으로 시간을 채워갔다. 모임이 열리지 않을 때면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감 키워드를 중심으로 가벼운 글쓰기 연습을 했다.
모임 진행자로서 내건 미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0꼭지 이상의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브런치 작가 도전하기였다. 글쓰기를 처음 하는 분들에겐 미션 수준이 조금 난감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첫날 모임에 오신 분은 평소 글쓰기를 하고 계시던 분이었다. 게다가 독립출판사 하모니북에서 진행하는 '하루 10분 글쓰기 습관 만들기'라는 모임을 통해, 공동 작가로서 문집을 몇 권씩이나 출간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첫 책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를 출판한 곳이 하모니북인데, 구미에서 열린 글쓰기 모임에서 하모니북 문집을 출간하신 분을 만난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튼 그분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미션을 잘 해내실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미션인 자전적 에세이 10꼭지 쓰기는 진작에 끝내셨다. 더불어 브런치 작가 도전도 단 두 번만에 성공하셨다. 와중에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분은 이미 '준비된' 분이어서 해드릴 것도 딱히 없었다.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어디서든 끄적이고 계실 분이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 내가 한 거라곤 말 한 마디 뱉은 게 전부였다.
"브런치 들어가서 신청이나 한 번 해보세요."
물론 신청하기만 하면 합격할 거란 강한 예감이 들어서 길게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모임에서 즉석으로 쓰신 글이 범상치 않았고, 그런 글들이 블로그에 쌓여 있다 하니 브런치 작가 합격은 시간 문제라고 봤다. 다만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관건은 이후의 행보였다. 애써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아놓고 방치하는 계정을 여럿 봐서 그분은 어떨지 내심 궁금했다.
이번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가장 뿌듯한 점을 꼽으라고 하면, 이원희라는 사람을 브런치의 세계로 초대한 것이다. 난 네이버 블로그에서 글을 쓰다가 브런치로 넘어오면서 날개가 핀 격인데, 원희님이 딱 그랬다. 원희님 글을 읽어보면 네이버 블로그보다는 브런치가 확실히 어울리는 듯했다. 브런치를 권유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글을 잘 쓰고 계신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분이다.
브런치의 관건은 글쓰기 습관에 달려 있었다. 글쓰기만 꾸준히 하면 되는 곳이지만, 글쓰기를 아무리 잘해도 습관이 몸에 배지 않으면 그다지 소용이 없는 곳이 브런치니까. 원희님처럼 글쓰기 습관이 몸에 밴 분이 내 앞에 또 나타난다면, 감히 결례를 무릅쓰고 브런치를 권할 것만 같다.
다만, 문제는 나였다. 글쓰기는 2년 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고,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출간해봤으니 자전적 에세이 10꼭지 쓰기는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대여섯 꼭지 정도 쓰고 나니, 이전에 쓴 글을 재탕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래 난 글쓰기를 시작하면 단시간에 글을 왕창 쏟아낸 다음 퇴고하는 타입이었다. 근데 그마저도 잘 안 됐다. 내 안의 글쓰기를 뽑아내는 배관에 정체모를 찌꺼기가 낀 느낌이랄까.
그래서 포기했다. 자전적 에세이는 잠시 내려놓고, 대신 팀장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팀장님에 대한 글은 예전부터 쓰려고 했었다. 그럼에도 여태껏 미루고 있었던 건, 죄다 상사 호박씨 까는 내용으로 가득 찰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보니 팀장님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은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팀장님을 보면 답답한 부분이 많았는데, 어쩌다 보니 내게도 그런 면이 결코 없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그러면서 팀장님 앞에만 서면 내가 얼마나 오만하기 짝이 없어지는지를 몸소 느끼게 됐는데, 그런 부분을 첨가하면 글로 써도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쓰게 된 글이 바로 2025년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한 <팀장님에게>였다.
살다 보면 생각대로 흘러가는 일이 거의 없듯,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지만 예상대로 써지는 법이 없고, 생각처럼 잘 써지다가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일쑤인 걸 보면 말이다. 글쓰기는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래서 재밌다.
p.s
이원희 작가님. 브런치 작가 되신 거 축하드리고 또 환영합니다. 삶의 경험이 남다르고 풍부하신 만큼 원희님 글 보며 많이 배우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글쓰기를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 세 줄 요약
1. 구미 모임 그로스맨에서 소수의 열정적인 글쓰기 모임을 진행했다.
2. 이원희 작가님이 두 번 만에 브런치 작가를 합격하는 등 큰 성장을 보여주었다.
3. 나도 적잖은 고생 끝에 <팀장님에게>라는 브런치북을 쓰게 되었다.
CONNECT
그리고, 이원희 작가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