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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까

'약속 시간을 지킨다'는 것의 진정한 함의

by 달보


난 성격이 되게 무난한 편이다. 딱히 큰 사고를 친 적도 없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거의 없다. 인간관계도 몹시 안녕했다. 학창 시절 왕따 한 번 당한 적 없이, 모범생부터 시작해 소위 일진놀이를 일삼는 애들까지와도 잘 어울려 지냈다. 감정기복도 거의 없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화를 내고도 남을 만한 상황에 처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워낙 둔한 나머지 상황판단이 느려터져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런 나였으니 난 스스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 약속 지키는 것 정도는 당연히 해낼 수 있고 해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약속시간을 지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령 친구와 만나기로 했을 때, 학교에 등교하거나 회사로 출근할 때 10번 중 3번 정도는 꼭 늦거나 거의 늦을 뻔한 상황이 일어났다. 처음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그저 운이 나빠서라고만 생각했다. 교통상황을 비롯한 바깥일은 워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내 통제를 벗어난 일들이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어떡해서든 약속시간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도, 그러질 못해 애를 먹는 건 오롯이 내 탓이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던 건 2시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니 '2시까지 도착할 수 있게끔' 집을 나선 것이었다. 9시까지 학교를 가면 되니 '9시까지 도착할 수 있게끔' 집을 나선 것이었다. 그러니까 난 제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려는 바람에 약속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약속시간 정시를 딱 맞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건 없고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일찍 가거나, 늦거나. 그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일찍 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진즉에 일찍 도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먼저 도착한 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난 기다리기 싫은 마음에, 손해 보기 싫은 마음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약속시간을 지킨다는 것의 진정한 함의는 곧 '기다림'이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꺼의 기다림이라는 희생을 감수하겠단 말이었다. 이후로 난 9시에 가야 되면 목표를 8시 50분으로 맞춘다. 친구와 3시까지 보기로 하면 최소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기다린다. 그 결과, 이전처럼 늦을까 봐 쩔쩔매는 입장은 언제나 상대방의 몫이 되어버렸다.


약속을 지키는 건 중요하다. 그건 곧 상대방을 배려함과 동시에 나를 지키는 일이며, 나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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