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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19. 2024

습관이 되지 못한 아메리카노

어쩌면 보통날 16


1-1. 황정은의 에세이 <일기>를 읽었다. 어쩜 이런 단어가 여기에? 어떻게 이 문장의 조합을? 하며 읽던 중 눈길을 멈추게 한 문단.


지난여름엔 달을 보다가 자려고 맹꽁이 소리를 들으며 거실 창 앞에 누워 있다가 호흡이 곤란해지고 말았다. 한데 모여 우는 맹꽁이 소리에도 나름 박자가 있고 내 숨에도 박자가 있는데 맹꽁이 박자가 너무 압도적이라서 내가 자꾸 호흡을 놓쳤다. 우는구나, 하고 예사롭게 들으며 잠드는 데 며칠 걸렸다.


이따금 불면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갖은 수를 써 봐도 수면 열차는 이미 저만큼 떠났고, 출근 열차는 어제와 다름없는 속도로 다가오던 늦은 새벽. 속는 걸 알면서도 유튜브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듣는 음악 같은 걸 검색했다. 전자음악도 아닌 것이 뉴에이지도 아닌 것이 어물쩍 신경을 잡아 끄는 음악이다, 싶더니 야트막하게 남아 있던 잠 기운이 사라져버렸다. 어떤 소리에 집중하다 흐름을 깨트린 경험은 비슷한데, 그걸 '박자가 너무 압도적이라 호흡을 놓쳤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반하는 것일까.



1-2. 요 며칠 비가 좀 내렸더니 창문이 무척 더럽다. 거실 쪽에선 어떻게 좀 닦아 보겠는데 바깥쪽 창문은 어쩌지. 그러고 보니 에어컨 실외기 아래에 비둘기 둥지가 꽤 오래 틀어져 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몇 번이고 찾아와 몇 번이고 알을 낳는 걸 몇 번이고 보고 있다. 이번에 놓인 두 알은 놓인 지 좀 된 것 같은데. 어미가 떠나버린 걸까. 그럼 저 두 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파트 창문 청소 대행, 에어컨 실외기 비둘기 둥지 같은 조합을 검색하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퇴근길에 장 볼 목록만 정리했다. 오늘 하루도 어찌어찌 잘 버텼다. 퇴근이 가까워져 절반쯤 마시다 남은 차를 정리하려 컵을 들어 화장실에 왔다.


회사 화장실에선 자주 의문이 든다. 흰 세면대에 남은 커피를 버리고 나서 왜 물을 한번 더 뿌려 갈색 얼룩이 지지 않게 하지 않는지, 휴지가 바닥에 잘못 버려졌으면 다시 집어 휴지통에 왜 넣지 않는 걸까 하고. 외부인의 방문이 많지 않은 회사라 이용하는 사람들은 빤하다. 누군가가 대신할 노동이라 쉽게 치환되는 것들. 그게 내 것이 아니라 여기는 것들.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틀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걸 확인한 뒤 컵을 씻고 손바닥에 물을 받아 세면대 넓게 물을 끼얹었다. 연둣빛 찻물과 갈색의 커피 방울이 개수대에 흘러 내려갔다.



1-3. 독서에 독서가 연결되는 일. 황정은의 에세이 <일기>에서 언급된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별 일 없이 산다는 말이 상대를 제일 약 오르게 한다고 했지. 약 올릴 상대는 없지만 대체로 별 일 없이 사는 중인 것 같다.



2-1. 라고 써놨다. 그러니까 1-1부터 1-3까지는 지금 쓴 게 아니다. 작년 10월쯤 저만큼 쓴 뒤 저장을 해놓았고 오늘 그 뒤를 이어 쓰고 있는 중이다. 4개월 전에 쓴 것과 오늘 쓰는 것을 분리하기 위해 문단에 번호를 붙였다. 그리고 나는 현재, 1-1부터 1-3까지의 내용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게 써놓은 이유를 잊었다. 1-1부터 1-3까지 써놓고 가제목으로 '나는 별 일 없이 산다'를 붙여놓았다. 별 일 없이 살았었나.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가장 낯설다.



2-2. 매년 일기를 써오다 작년 한 해는 일기 쓰기를 중단했었다. 누구랑 만나 뭘 먹었고 어떤 영화를 봤고 처럼 사실 나열로만 쓰는 일기가 뭔 소용인가 싶었고, 그럴 거면 거의 매일 업로드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 게시물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일기를 쓰지 않으니 기록해야 한다는 감각이 차츰 사라졌고, 자연스레 기록할만한 것들을 기억하는 행위도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다. 방탄소년단 <coffee>에는 '그리고 잘 안 마셔 마끼아또. 알잖아 너 땜에 습관이 된 아메리카노'란 가사가 있다. 내겐 결국 아메리카노는 습관이 되지 못했다.


작년 말에 했던 건강 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 절주를 시작했다. 도저히 금주는 불가능할 걸 알기에 세운 목표다. 일주일에 하루. 아주 소중한 음주 기회이기에 무얼 마시고 먹을지 일주일 내내 고심한다. 와인이 좋을까 맥주가 좋을까, 와인이면 안주로 회가 좋을까 샐러드가 좋을까. 그렇게 마침내 당일. 구운 버섯 트러플 파니니에 샴페인.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조합을 세팅했으니 이젠 배경음악 차례다. 유튜브 목록을 넘기고 넘기고 넘기고. 선택지가 무궁하니 도리어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이러다 파니니 다 식겠다. 결국 이전 재생목록을 훑은 뒤 영상을 선택했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태연이 부른 비긴어게인 노래 모음. 그중 제일 먼저 듣는 건 <사계>.


자리를 잡고 앉아 잔에 샴페인을 따르고 마셨다. 찌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자잘자잘한 기포의 맛. 일주일만의 행복. 화면 속 태연이 가볍게 속삭이듯 부른다. 내 겨울을 주고 또 여름을 주었다고. 그건 다 준 건데, 더 남은 거 없이 다 준 건데 하며 두 모금, 세 모금.  



2-3. <번역: 황석희>에는 아래와 같은 문단이 있었다.


(중략) 누군가에게 이런 서사를 들을 때면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커다란 의식 없이 이 일을 한다는 게 죄스러워진다고 해야 하나. (중략)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비자발적 절도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간절한 소명의식이 있는 이들의 자리를 훔친 것처럼. (중략)


방송국은 직업 소명이 높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기자로서, 아나운서로서, PD로서 무언가를 만들고 전달해야 할지 하루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고민한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 고민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개개인에 대한 호오를 떠나 나만 외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서늘한 감각을 느낀다.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치열한 고민을 거치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들어왔고, 업무는 틀리지 않게만 하면 된다고 여기고,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 사람이라서.


미디어에 노출된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에(정말로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움이나 자괴감 느낄 것 없이 내 자리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 될 일이다.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어찌 보면 그 어떤 사연보다도 훨씬 운명적이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고, 내 일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읽었는지. 이 두 문단이 들어간 글의 제목은 <어쩌다가 됐어요>였다. 어떤 책은 때에 맞게 온다. 꼭 읽어야 할 때 찾아온다.



2-4. 인간은 단편적이고 개별적이고 휘발적인 하루를 사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점묘화처럼.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 덩어리이지만 가까이 보면 실루엣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그래서 그렇게 기록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연결고리를 잃지 않으려고.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습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마시는 커피 향은 커피를 마시고 싶게끔 한다. 2-1부터 여기까지 한달음에 썼다. 이후 난 또 잊을 거다. 나중에 읽고 오늘의 나를 또 새삼스러워하겠지. 손을 푸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썼지만 올해는 계속, 많이 쓸 예정이다. 내가 쓰는 글을 제일 재밌게 읽는 독자인 나를 위해. 그 과정에 향의 흔적이 남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비둘기 둥지는 이후 전문 업체를 불러 제거했다. 알 두 개는 공격을 받았는지 모두 깨져 있는 상태였고 에어컨 실외기 아래에는 죽은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 주변을 모두 청소한 뒤 이 주변에 다시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철창을 세워 막는 공사를 진행했다. 비둘기가 쉴만한 공간 하나를 빼앗았다는 미안함은 잠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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