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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Feb 20. 2024

아픔의 역치

어쩌면 보통날 17



1. 아침부터 흐리더니 점심때가 지나자 하늘은 결국 비를 쏟아냈다. 딱 좋게 어두워 분위기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면 좋겠다 싶다. 소파에 자리 잡고 OTT를 연결했다. 뭘 보지. 스크롤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면 진작 뭐라도 절반은 봤겠다. 가입된 OTT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고, 어느 것 하나 고르지 않았는데 30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봤던 영상들을 통해 유추해 제공한다는 <취향 반영 추천 목록>은 "이거 내 계정 맞아?" 할 정도로 리스트가 형편없고, 이건 너무 가볍고 저건 너무 무거운 것들 뿐이다. 결국 돌고 돌아 유튜브. 알고리즘 제일 첫 머리에 올라와 있는 예능 클립을 클릭했다.


그날의 날씨와 최근의 관심사와 근래의 취향과 주연 배우나 줄거리에 대한 호감 등을 완벽하게 벼려 볼거리를 추천해 주는 인공지능 어디 없나. 



2. 개운하지 않은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새벽녘부터 눈이 부시다 싶더니 내내 함박눈이 내렸나 보다. 1년 내내 같은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커튼을 걷으니 주차된 차의 모양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꼭 생크림 케이크 같네 보들보들해 보이는 게- 라고 생각한 건 찰나. 차 가지고 출근하긴 글렀네, 혀를 끌 찼다.


우리 집은 회사까지 자차로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단 시간으로 가려면 앉을자리 없는 버스로 반드시 갈아타야 하고, 여유 있게 앉아 가고 싶으면 배차 시간이 30분이 넘는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오늘 날씨라면 만원 버스가 사람들의 호흡에 창문이 희게 서릴 게 분명하다. 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 놓은 장갑과 목도리를 꺼냈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골랐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하는 게 꼬박 일 년만이다. 일 년 전 그날도 폭설이었다. 자신들이 타야 버스 시간을 적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차례로 정류장에 왔다가 사라졌고, 바뀐 배차 시간을 미리 확인 나만 출근 시간 정류장에 멀뚱히 남았다. 40분 가깝게 시리게 기다린 뒤에야 겨우 반가운 버스 번호가 저멀리 시야에 잡혔다


눈이 세상의 재생속도를 꼭 0.8배 정도로 늦춰 놓은 것 같다. 느리게 지나치는 창 밖의 풍경을 무심코 지나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가 정차하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내렸다. 침입의 흔적이 없는 하얀 눈 둔덕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이 반질반질 닦아 놓은 길. 그러나 모두가 지나간 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평평하게 다져진 길은 반짝반짝 얼어 있어 일순 크게 휘청였다. 얼른 균형을 잡고 닦인 길 옆의 눈 무더기를 밟았다. 발이 금세 차가워졌지만 적어도 미끄럽지는 않다. 그때부터 다져진 길과 쌓인 눈을 적당히 옮겨 가며 걸었다. 나는 이럴 때 무심코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회사까지는 얕은 오르막 길을 연속해서 올라야 한다. 평소라면 내 느린 걸음으로도 10분이면 충분하지만 걸음걸음마다 곧은 힘을 주고 걸으니 평소보다 곱절이 걸린다. 신발 밑창으로 땅 표면을 착실히 느끼며 걷는데 3분의 1쯤에서부터 숨이 헐떡인다. 고작 이것 걸었다고 목 안이 바짝 마르고 종아리가 땅긴다. 여행지에선 하루 2,3만 보도 거뜬히 걸으면서. 


운전을 시작한 이래 보통 하루 2천 보도 채 걷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이런 출근길조차 걸음을 허둥댄다. 인간이 일 년에 걸어야 하는 일정량의 걸음이 있다면 나는 여행을 할 때 남은 많은 양을 걸어내는 거구나- 생각하다 그렇다면 내 몸이 여행을 부르는 거구나- 했다.


아! 나는 살려고 여행하는 거였나. 



3.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저자나 책 제목에 대해 사전에 들은 바 전혀 없이,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구입한 책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을 채워 넣고 싶을 정도다. 젊은, 아니 어린 시인이 쓴 에세이. 진중한데 아주 무겁지 않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데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이래야 시인이 될 수 있는거구나, 시를 쓸 수 있는 거구나 싶다. 완벽히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각. 읽기에도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여운이 담긴 손길로 책장을 다시 제일 앞으로 넘겨 작가의 약력을 다시 읽었다. 간단한 설명 아래 적힌 알파벳의 조합. 작가의 SNS 주소다. 분명 올려놓은 사진과 글들이 예사롭지 않겠지. 망설임 없이 앱을 열었다. 


응?.. 아?.. 응?


셀카? 그럼.. 올릴 수 있지. 거울 셀카? 아무렴.. 찍을 수 있지. 한강 피크닉?.. 당연히 할 수도 있지. 그저 다만 내가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이미지와 조금, 아주 조금 다를 뿐. 스크롤을 내리며 사진을 클릭하는데, 내용엔 이모티콘 하나만 소박하게 담겨 있다. 그렇구나. 이런 SNS구나.


그러다 아차. 누군가 나를 대상으로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어이 없을 것 같아서. 나와 대화 한 번 나눠보지 않고 나를 제멋대로 상상했다가 상상과 다르다고 마음껏 실망한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가. SNS엔 특정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고, 그건 순전히 업로드하는 자의 마음인데. '당신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고 계시는 거'라는 누군가의 SNS 프로필 문구가 생각난다. 


이런 저런 모습들이 쌓인 그이기에 그런 글을 책 한 권에 꽉 채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타인을 쉽게 오독(誤讀)하지 말 것. 내 편견에게 다시금 제동을 걸 순간이다.



4. 작년 12월부터 처음으로 피부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3년 간 쓰고 다닌 마스크의 모양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볼 위쪽으로 자잘하게 솟아난 기미 때문이다. 화장을 하면 적당히 가려져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 맨 얼굴을 빤히 보던 엄마가 "피부가 많이 안 좋아졌네(라고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뉘앙스는 충분했다)"라며 손가락으로 왼쪽 눈 밑을 가리킨 이래로 거울을 보면 눈 코 입보다 기미에 먼저 시선이 닿는다는 걸 깨닫고 피부과를 찾은 것이었다. 


피부과를 검색하면 온통 광고 글 천지라 그냥 '왠지 잘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가까운 곳 한 군데를 골라 예약을 잡았고, 그날부터 바로 레이저 치료(일까 시술일까)가 시작되었다. 부러 더 깨끗하게 꾸며놓은 듯한 순백색의 세면 공간에서 세수를 마치고 거울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이 든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 자로 눕힌 의자에 누워 있자 처음 보는 얼굴의 의사가 들어왔고 간단한 설명이 있은 뒤 아픔 정도가 괜찮을지 확인해 보겠다며 얼굴에 레이저 한 방을 훅 놓았다. 뭔가 짧게 태우고 지나간 것 같은 따끔한 고통이 잇따랐다.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에 본격적으로 레이저가 난사되기 시작했다.


아픈데. 이게 아픈건가. 이 정도는 다 참는 건가. 이 정도면 아프지 않은 건가. 참을만한 거 같은데. 참을만한 건가. 참아도 되는 건가. 이럴 땐 아프다고 해도 되나. 아프다고 해도 되는 정도의 아픔인가. 남들은 이 정도를 아프다고 느끼나. 남들은 어디까지를 아프다고 하는 걸까. 


"처음인데 정말 잘 참으시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마사지 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누워 있는데 어느덧 끝이 났단다. 하얀 재킷에 검정 치마를 입은 직원을 따라 이동해 안내된 침대에 누웠다. 매트가 깔려 있는지 등이 따뜻하니 저절로 눈이 감겼다. "진정 마사지 들어가겠습니다" 얼굴에 시원한 팩이 올라오니 얼굴 전체가 화끈해 있다는 게 실감 났다. 깜빡 졸고 나니 마사지도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가려 재킷을 넣어놓았던 락커로 향하다 길목에 놓인 거울로 내 모습을 봤다. 내 아픔의 역치가 손 닿지 않는 상공 어디쯤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부어오른 얼굴이 말하고 있다. 사소한 아픔을 아픔으로 느껴도 되는지 고심한 흔적. 아픔을 충분히 말하지 못해 온 표정. 


높은 역치의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쳤다.


내가 결제한 치료는 2주에 한 번씩, 총 5회 진행한 피코슈어토닝 레이저였고, 5회 만에 나름 꽤 괜찮게 피부가 밝아져 이후 추가 결제는 하지 않았다. 기실 짧게 진행되는 레이저 시술보다 시술이 끝난 뒤 얼굴의 열을 가라앉혀 주는 긴 시간의 마사지가 좋았고, 그 마사지를 하기 위해 누워 있는 시간이 더 좋았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물질과 비물질을 동시에 선사하는 그 시간이. 5회를 진행하는 내내 이게 아픈 건지, 이걸 아프다고 하는 건지, 남들은 이 정도가 아픈 건지 내내 고민했지만 여전히 그 답은 내리지 못했다.



5. 재밌게 봤던 예능 <홍김동전>은 빵 터트리는 웃음 외에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따금 눈물을 짓게 하는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뿌려놓은 프로그램이었다. 한동안 내 '밥 친구'로 훌륭한 역할을 해주었기에 폐지가 무척 아쉽다. 여러 회차 중 이화여대 축제를 찾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크 버스킹을 진행한 <이화여대 캠퍼스 특집>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출연진끼리의 약간의 대화가 먼저 있은 뒤 학생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집에서의 정리정돈부터가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답한 홍진경의 말에 김숙이 덧붙인 아래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혼자 밥을 차려 먹거든요. 근데 옛날엔 그냥 막 냉장고 앞에서 먹었어요. 근데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뭘 하냐면, 밥을 차려먹어도 되게 예쁘게 차려 먹어요. 그러면 나한테 주는 선물이잖아요? 그게 너무 행복감이 나요. 근데 그걸 어떤 사람이 보잖아요? 그러면 그걸 "아, 숙이는 저렇게 예쁘게 먹지. 그럼 나도 예쁘게 차려줘야지"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친구도 나한테 예쁘게 차려주니까 나도 예쁘게 차려주고 싶고. 그러면서 서로 존중하게 되는 거예요.


나를 내가 대접하면 남도 나를 대접한다. 


혼자 살다 보면 대충과 타협하는 일이 생긴다. 설거지 거리가 늘어나는 게 귀찮아 햇반 채 그대로 먹거나, 건조대에 마른 옷을 개지 않고 있다 그대로 건져 입는다거나, 하루 이틀 정도의 청소는 미룬다거나 하는. 그래서 나는 더욱 의식적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잔을 바꿔 가며 마시고, 세트로 맞춘 식기에 밥과 국과 반찬을 담아 먹고, 배달 음식도 어울리는 그릇에 옮겨 담아 먹는다. 내 취향에 맞게 예쁘게 맞춰 먹는 게 좋아서였는 줄 알았는데. 내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얻었다. 나는 나를 대접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와 보드 게임을 한참 하던 중 과자를 먹겠다던 조카가 혼자 주방으로 향했다. 봉지 과자만 하나 들고 올 줄 알았더니 다른 한 손에 흰 디너 접시가 들려 있었다. 뭘 하나 봤더니 거실 테이블 위에 디너 접시를 올리곤 봉지 과자를 뜯어 내용물을 접시 위에 천천히 부었다. 접시를 살짝 흔들어 과자 담음새를 정리하더니 "이모처럼 먹는 거야" 했다.


조카가 조금 더 크면 나도 저 말을 그대로 돌려줘야지. 그런 하나하나를 쌓아 자신을 대접하며 살아가라고. 그럼 타인도 너를 대접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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