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보통날 15
* 이 여행기는 추후 짧은 버전으로 수정되어 타사이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작은 술을 마시면 호기로워지는 나의 불순한 습관 탓이었다. 엄마를 집에 불렀고, 배달 음식을 시켰고, 와인을 꺼냈고, TV로 유튜브 계정을 연결했던 어느 토요일 저녁. 알고리즘이 이끄는대로 튼 아무 영상으로 파리 여행 브이로그가 재생되었다. 파리는 내 첫 유럽 여행지이자 가장 많이 다녀 온 유럽 여행지이기도 하면서 친구랑도 여동생이랑도 혼자도 다녀왔으며 약간의 썸이 있기도 했다가 스스로 생일을 기념하기도 했던 도시. 유독 마른 몸을 한 엄마가 상체를 구부려 식사를 하는 모습과 TV 화면을 번갈아 보다 와인을 마시던 때.
“엄마 나랑 파리 한 번 갈까? 어때?”
보통의 엄마였다면 됐다며 고개를 저을 타이밍인데 갑작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들었다. “…가면 좋지.”란 승낙을. 휴일이 없이 일하는 자영업자인 엄마가 연달아 쉴 수 있는 날은 고작 명절 연휴. 달력을 확인하니 올해 추석 연휴가 제법 길다. 지금이 아니면 아마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를 결정.
“파리만 보기에 5일은 짧을 수 있는데... 그래도 추석 때 가자! 파리.”
시작은 술을 마시면 호기로워지는 나의 다행인 습관 덕이었다. 코로나 기간에 맞춰 만료가 된 엄마의 여권을 갱신하고, 예전보다 두 배는 더 오른 항공권과 호텔을 결제하고(추후에 알았지만 우리 여행 기간이 추석 연휴이기도 했고, 파리패션위크과 겹쳤다.), 육십이 훌쩍 넘은 엄마의 체력을 고려해 유명 관광 스폿 위주의 어렵지 않은 동선의 일정을 짜고, 식당만큼은 그간 가보고 싶던 곳들을 추리고 추려 예약을 마쳤다. 여행을 결심했던 그 저녁으로부터 약 8개월 여가 흐른 9월 28일 새벽. 차 뒷좌석에 두 개의 캐리어를 실은 뒤 목적지로 인천공항 제2터미널 주차장을 찍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연휴 첫 날이니까 고속도로가 막힐 지 모르고, 주차 대행을 예약해 놨지만 주차장 입구부터 막혀버리면 답이 없는데다 연휴 기간 인천공항 이용객 증가로 혼잡이 예상된대서 새벽 3시에 출발한 도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가로등 불빛이 하나도 없이 아주 어둡다. 그렇게 꽤 오래 운전을 하며 인천을 향하는데, 반대 방향의 고속도로에 차량 불빛이 아주 번쩍번쩍하다. 귀성길을 서두른 수많은 차들의 불빛으로 얻은 이상한 위안. 물길을 거스르는 연어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환한 불빛을 내며 시야를 밝혀주는 것이 꼭 이 거스름의 방향을 응원해주는 것 같다. 여행이 충분히 무탈할 듯하다.
최대 5, 6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며 서둘렀는데. 결국 비행기 탑승 4시간 전에 도착해버렸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북적이는 공항의 활기는 바이러스 이전의 시대로 복귀한 것만 같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보안 체크를 마치고 들어와 탑승구 앞에 앉았다. 특별할 것 없는 조상이라 뭘 바라고 살아온 적이 없는데 그런 특별하지 않은 조상 덕에 제사 안 지내고 여행가는 거야, 같은 철없는 농담을 했다.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거쳐 날이 저문 파리에 도착했다. 늘 도착 첫 날의 밤은 이곳이 내가 알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다. 아직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 생드니에서 파리 18구로 진입한 모든 길들이 무척 황량하다. 중동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만 이따금씩 열려 있고, 거리엔 쓰레기가 나뒹군다.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을 보며 예쁘다 하고있을까,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보고 낯설다 느끼고 있을까.
짧은 일정 동안 많은 이동을 있을 거라 호텔은 파리 중심부인 오페라 가르니에와 도보로 5분 이내로 가까운 곳으로 예약했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씻으니 엄마와 나 모두 자울자울. 시차 덕에 아주 길었던 하루가 이제야 끝난다. 내일 일찍 일어나 동네를 구경하기로 하고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은 마스크팩을 얼굴에 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무사히 도착했다.
여행에 적당한 날짜란 있을 수 없다. 여행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는 정복. 파리가 일주일이면 충분할 지, 한 달이면 충분할 지, 일 년이면 충분할 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파리에 고작 4일 있는 것일 수도, 4일이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있는 동안 마음껏 즐기기가 목표. 오전 6시가 되니 엄마가 일어났다. 이대로 누워 있느니 잠도 깰 겸 차라리 파리의 거리를 걷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데에 합의 완료. 오전 7시 30분.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호텔을 출발했다.
2023년 9월부터 종이 절약과 환경 보호를 위해 종이 승차권 판매가 중단된 파리. 오페라 역에서 아주 친절한 역무원을 만나 충전식 교통카드인 나비고 이지 2개를 쉽게 구입했다. 변화에 시큰둥한 파리도 바뀌어 가는구나. 버스를 타고 생제르망 데프레의 카페 드 플로르에 도착했다.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유서깊은 곳으로 파리만의 카페 문화를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일 듯 해서다. 입구에 서 점원의 안내를 받은 뒤 좌석에 앉았다. 바게트와 크로와상, 커피를 시키고 둘러 보는 분위기. 이른 시간인데도 거의 만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옆자리에 한국인 모녀가 앉았다.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대화가 들려오는 좁은 테이블 거리. 그러다 엄마를 거리가 보이는 안쪽으로, 본인은 그 반대 방향으로 앉은 똑같은 구도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느 기점이 지나면 모녀의 위치 전환이 일어난다. 엄마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딸.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 루브르 박물관이 다다르자 충동적으로 내렸다. 하루를 다 쏟아도 충분하지 않을 루브르 박물관이라 이번 일정에서 과감히 뺐는데,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외관이라도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아침 일찍 부지런히 입장 줄을 서고 있는 관광객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팔레 루아얄 정원을 건너 오페라 가르니에까지 걸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축약시켜놓은 듯한 그랜드 로비와 샤갈의 천장화가 인상적인 오페라 가르니에를 오픈 런으로 구경을 마치고 개선문을 향했다. 넓은 샹젤리제 도로의 가운데 끝에서 약간의 기다림 끝에 개선문을 등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파리가 처음인 엄마를 위해 유명 관광지 위주의 코스를 짰는데 사실 그간 파리를 혼자 여행하며 못 찍었던 인증샷의 아쉬움을 다 털어내는 건 나다.
샹젤리제 파리 생제르맹 기념품 샵에서 이강인 이름과 번호를 마킹한 조카 선물을 산 뒤 조금 걸었다. 머지않아 두 대의 남다른 버스가 보였다. 2층 버스로 관광지 투어를 하며 코스 요리로 식사를 제공하는 버스트로놈 버스다. 엄마가 파리에서 먹는 첫 점심이 특별했으면 좋겠기에 일찌감치 예약해 놓았다. 예약자 이름을 확인 한 뒤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꽃다발을 들거나 셀카봉을 든 사람들 모두 환히 웃고 있는 내부. 버스가 출발하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서빙 받았고, 이내 에펠탑이 보이는 도로로 들어섰다. 빗방울이 약간 흩날리는 날씨였는데 구름 사이로 빛이 스미더니 어느덧 맑게 갰다. 개선문부터 시작해 에펠탑, 앵발리드, 알렉상드르 3세 달리, 튈르리 정원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코스. 총 4코스로 이루어진 음식도 무척 맛있었고, 무엇보다도 엄마의 눈이 솔직하게 반짝이는 게 느껴졌다. 파리가 처음이 아닌 내게도 무척이나 즐거웠던 경험. 두 시간이 지난 뒤 버스를 탑승한 곳에 돌아와 내렸다.
분명 방금까지 동영상을 찍으며 좋아한 엄마였는데, 다음 코스로 예약해놓은 오랑주리 미술관을 향하려고 하자 어디 눕고만 싶으시단다. 미술관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호텔로 돌아가 쉬었다가 나오면 되지 않겠냐고 명확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근처 정류장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리는 엄마의 몸짓에 짜증이 울컥. 볕이 은은하게 내린 오랑주리 미술관의 오후의 수련만큼은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왜 주기적으로 미술관을 가고 미술과 관련된 책을 사 모으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약간의 분노를 삭히며 결국 호텔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날짜와 시간을 지정해 예약해놓은 티켓 두 장을 허공에 날렸다.
오전 7시 30분부터 나가 오후 3시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녔으니. 엄마와 함께 하기에 과한 일정이긴 했다. 엄마와 같이 왔어도 나는 파리 욕심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구나. 그래도 이대로 일정을 마무리 하기엔 너무 아쉽다. 마음 같아선 혼자라도 나가고 싶은데 호텔에 덩그러니 엄마를 남겨둘 순 없으니. 날이 좀 어두워지자 엄마를 깨워 재촉해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곳은 바토 무슈 선착장. 졸음과 사투를 하며 유람선에 탑승을 한 엄마를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먼 거리를 떠나와 이국의 거리를 걷고 있음에도 이국이란 자각이 없던 하루. 좋아하는 노래를 듣자 이제야 사유가 끼어 든다. 떠나오면서 느낀 몇몇의 감정은 핸드폰 메모장에 짤막하게 기록해놓고 세느 강변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페어 댄스를 추는 파리지앵들을 눈에 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의 모습은 저 건너 편에 있지만 내가 해야 하는 여행은 꿈뻑거리는 엄마의 현재 눈꺼풀에 있다.
하늘이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완전히 어둡기 직전이 가장 아름다운 파리. 주홍색 불빛을 뿜어내는 에펠탑까지 욕심껏 눈에 담은 뒤 호텔로 돌아왔다. 여행이 다 끝난 뒤 엄마가 말했다. 그때 꼭 무슨 약을 먹은 것처럼 몸을 가눌 수 없게 잠이 오더라고. 많이 걸은 거에 비해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졸음 앞에 장사 없더라고. 이날 이후 밤의 에펠탑은 다른 일정에 치어 보지 못했다. 그래도 어떤 욕심은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일 수 있다.
어느덧 3일째 아침. 꽤 오랜 시간 푹 잤다. 가뿐한 몸으로 채비를 마치고 오페라 역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는데, 버스를 조금 기다리고 있자 한 손에 작은 마이크를 든 가이드와 이어폰을 꽂은 여럿의 관광객들이 다가왔다. 아마도 워킹 투어를 신청한 한국인인 듯했다. 인터넷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각자 신청해서 모인 것이라고 엄마에게 설명하자 “...혼자 다니는 네가 대단한 거야”랬다. 그간 여행하는 돈을 아껴 저축하라던 엄마에게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들은 내 여행에 대한 긍정의 말이었다.
오늘의 첫 일정은 생트샤펠. 아침 햇살에 차르르 쏟아지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온갖 색감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짐 검사를 마치고 기대감과 함께 들어섰는데, 내부를 채 관람하기도 전에 “이게 다야? 이거 보러 오는 거야?”란다. 그러곤 온몸으로 재미없다는 걸 표현하듯 출구 쪽에 떨어져 서 있는 엄마를 보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급하게 사진과 영상으로만 담고 바깥으로 나왔다. 부모님 여행 10계명 같은 것들이 괜히 밈으로 도는 것이 아니다. 아쉬운 대로 가까운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보수 공사 중 화재가 난 이후 내부 구경을 할 수 없는 것보다 파리를 다시 오게 한다는 성당 앞 포앵 제로를 다시 한 번 밟지 못하는 것이 더 아쉬웠다.
동선을 최소화하다보니 매번 비슷한 곳들만 다닌다. 다시 피라미드 역으로 나와 카페 키츠네 2층 창가에 자리 잡곤 커피 한 잔씩을 마셨다. 반팔과 경량 패딩이 공존하는 날씨에 대해서, 깃발을 들고 다니는 나라별 단체 관광객에 대해서, 카페 분위기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벼운 브런치 음식들을 먹기 위한 줄이 꽤 길어져 있었다.
점심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중요한 장소로 나온 르 그랑 콜베트(Le grand colbert)로 예약해 놓았다. 카페에서 도보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 콜드 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을 닮은 점원이 예약된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술을 못 마시는 엄마 덕에 화이트 와인 한 잔만 먼저 주문한 뒤 메뉴를 골랐다. 프랑스 음식의 기본과도 같은 에스까르고와 어니언 수프, 소고기 요리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계산을 할 때 크리스 마틴을 닮은 점원이 파리가 처음이냐 물어 엄마가 파리에 처음 왔다 하자 그런 처음의 경험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냔다. 맞다. 대체 왜 점원이 계산을 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엄마에게 손님이 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것이 경험일 테니까. 밥을 먹고 나오니 날이 쨍하게 맑고 덥다. 이럴땐 당초 예정했던 것처럼 마레 지구에서 쇼핑하는 것 대신 몽마르트에 올라야 했다.
맑은 토요일 오후의 몽마르트. 아베스 역의 사랑해 벽, 벽을 뚫는 남자 동상, 테르트르 광장 넘어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관광객들이 많아 천천히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로 표현되는 남자아이, 와인을 마시는 테라스의 연인, 호객 행위를 하는 거리의 화가. 사크레쾨르 성당 내부를 구경하는 것보다 성당 앞 계단에서 파리 전경을 보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라 사람들 틈에 껴 앉았다. 거리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바이올린,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의 선글라스,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꼬마기차.
이래서 오페라 역이 교통의 중심지라고 하나 보다. 사크레쾨르 성당 바로 앞에서 호텔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있어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몽마르트의 좁은 일방통행 길을 이리저리 지나며 내려오니 어느덧 도착. 호텔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기념품을 사서 돌아왔다. 호텔에서 좀 쉬다 나와 가까운 중식당에서 비주얼에 비해 맛이 영 형편 없는 샤오룽바오로 아쉬운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긴 일정은 아니지만 관광 명소 위주로 돌아다니는 거면 파리만 있기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욕심을 내 주변국 당일치기 일정을 세웠다. 처음엔 룩셈부르크를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랜드마크가 확실한 곳이면서 내가 잘 아는 곳이라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을 도시가 낫겠다 싶어 결국 런던으로 선회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밤 늦게 돌아오는, 말 그대로 ‘말이 돼?’하는 어메이징한 하루를 보낼 예정으로.
파리에서 런던으로는 도버 해협을 지나는 유로스타로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영국이 EU를 탈퇴하면서 출입국 심사를 거쳐야 해 늦지 않도록 넉넉하게 출발했다. 청소부의 비질 소리와 간간이 지나가는 택시의 소음만 있는 조용한 거리. 이른 출근객과 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타 있는 첫 차를 타고 북역에 다다랐다.
작년에 브뤼셀을 갈 때 이용해본 적이 있는 북역이라 헤매지 않고 유로스타 탑승장에 도착했다. 출국 심사를 받고 들어와 폴(PAUL)에서 크로와상과 뱅오쇼콜라, 아메리카노를 아침으로 시켜 엄마와 함께 나눠 먹었다. 캐리어를 끄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꽤 보였는데, 빨리 기차에 올라타 짐을 두려는 듯 탑승구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제 하루를 빨리 마무리했음에도 일찍 일어난 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기차가 출발하고 익숙한 도심 풍경을 지나 너른 초원을 지나갈 즈음부터 나른한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왔고, 햇살에 눈이 부셔 잠이 들었고, 언제 바다 밑을 지나쳐온 줄 모르게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다다랐다.
런던 대중교통은 컨택리스 신용카드나 애플페이로 탑승이 가능했다. 두 시간 반 만에 또 다른 분위기의 도시에 도착한 것이 실감났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런던 도심을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은 만 일곱 시간. 바로 웨스트민스터 역으로 출발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빅벤, 국회의사당, 런던 아이 그리고 템즈강을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곳답게 역 출구로 나오자마자 발 디딜 곳 없이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지난 런던 여행 때는 보수 공사 때문에 볼 수 없었던 빅벤이 화려한 얼굴을 하고 있어 엄마보다 내가 더 반가워했다. 흐린 하늘 아래 금색의 빅벤과 빨간 2층 버스와 공중전화부스, 화려한 꽃들로 장식된 건물의 테라스. 2시간 반만에 런던이라니. 엄마는 파리보다 런던이 도로도 넓고 사람들의 느낌이 다르다며,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더니 그게 딱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짧은 새에 파리와 런던을 비교도 하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는데 엄마도 여행을 하고 있구나.
일본 축제가 열리고 있는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갤러리를 지나쳐 코벤트 가든으로 도착했다. 작은 광장마다 마술이며 브레이킹 댄스며 거리 공연이 열리고 있다. 변함없는 일요일. 런던에선 점심 식사를 한 끼 겨우 할 수 있는 일정이지만 식사 장소는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계 최고 로맨틱 레스토랑 14곳 중 하나로 꼽았던 <clos maggiore>. 7년 전, 이곳에서 혼자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곳이다. 그때 분명히 다음에 이곳을 찾게 된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지, 라 생각했는데 결국 엄마와 오게 되었구나. 조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내부에 자리를 잡고 와인 한 잔에 게살 샐러드와 머쉬룸 리조또, 대구 스테이크를 먹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분위기와 맛이었다.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리젠트 스트리트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토트넘 구장에 가지 않아도 손흥민 유니폼을 살 수 있다는 나이키타운에 도착했는데 딱 손흥민 마킹지만 품절이란다. 유럽 통산 200골을 어제 기록했다던가. 아쉽게 이강인과 손흥민 유니폼을 모두 사려는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세인트 폴 대성당과 더 샤드, 그리고 타워 브릿지까지 감상한 뒤 세인트 판크라스 역으로 돌아왔다. 런던이 가지고 있는 아기자기한 맛이나 자잘한 재미를 느낄 새는 없었지만 이만하면 정말 알차게 돌아다녔다. 아는 도시의 힘.
만 하루를 꽉 채워 쓰고 싶어 파리 북역에 밤 11시가 넘어 도착하는 유로스타를 예약했었는데, 호텔까지 바로 가는 버스를 타더라도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은 꽤 가혹한 것 같아 추가 금액을 내고 시간을 당겼었다. 그런데 출국 수속을 밟고 들어오니 대기 공간에 앉을 자리가 없이 빽빽해 전광판을 확인하니 파리행 유로스타가 줄줄이 탑승 지연이다. 도착 시간이 결과적으로 똑같아져버렸다. 이런 지연쯤은 익숙한 듯 가방에서 플레잉 카드를 꺼내 삼삼오오 앉아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 겨우 앉을 만한 바닥을 찾아 앉았다. 엄마는 어느새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고, 나는 언제 상황이 변할 지 모르니 무거운 눈꺼풀을 지탱하며 있었다. 왜 지연이 됐는지 따지거나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없다. 파리냐 런던이냐가 아닌 이런 데에서 불쑥, 9천 킬로가 넘게 멀리 떠나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벌써 5일째 아침, 떠나야하는 날이 되었다. 그나마 밤 비행기라 캐리어를 호텔에 맡겨두고 일찍 출발했다. 이제는 익숙한 오페라 역 앞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자 그제 만난 한국인 투어 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매번 일정을 오페라 가르니에에서부터 시작하는가 보구나. 새로운 투어객들을 앞에 두고 마이크로 설명을 계속 이어간다. 이 아름다운 풍경도 매일 같은 동선으로 매일 같은 설명을 하면 질리기도 할까. 이번에도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탄 투어객들은 그제와 똑같이 피라미드 역에서 벨을 눌렀다. 누군가의 처음과 누군가의 일상이 함께 내렸다.
우리는 조금 더 달려 파리 시청 근처에 내렸다.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조형물을 보기 위해서였다. 샤틀레 역에서 조금 더 걷자 압도적인 규모의 시청사 건물이 나타났고, 그 앞에 커다란 오륜기가 보였다. 2024년은 파리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 오륜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도심 곳곳이 올림픽 경기장이 될 예정이라 현재 곳곳을 막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파리. 올림픽이 끝난 뒤의 파리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외관 파이프가 이질적인 퐁피두 센터를 지나 마레지구 중심으로 들어왔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에 있는 정원 카페 Fabula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었는데 아뿔싸 월요일이 휴무구나. 미리 봐 둔 Fika도, 구글 지도에 표기해놓은 카페들도 월요일 휴무가 대부분이었다. 엄마 컨디션에 맞춰 가고 싶던 장소들을 뒤죽박죽 섞었더니 이렇게 됐다. 그래도 보이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도 좋은 곳이 마레지구 아닌가. 근처 길가에 자리한 카페 Camille 야외 좌석에 앉아 엄마는 착즙한 오렌지 주스를,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를 시켜 마셨다. 누가 봐도 화려한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더니 카페 건너편에서 화보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이 그 자체로 배경이 되는 곳 답다.
보주 광장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메르시. 개인으로 여행 온 한국인들을 제일 많이 만날 수 있는 유명 편집샵이다. 작년에 무게 때문에 사지 못하고 침만 흘리고 나왔던 접시와 엄마가 쓸 수 있는 에코백을 하나 골랐다. 어디 가면 가격부터 보느라 기념품 하나 제대로 사지 못하는 엄마에게 유로 환율을 자못 속여 적은 금액을 말해주니 못 이기는 척 하나를 고르게 할 수 있었다.
점심은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넘어 온 곳,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Substance>에서 했다. 메뉴를 고를 필요없이 고정된 메뉴가 순서대로 서빙되는 곳. 미슐랭 별을 받은 곳이지만 무척 캐주얼한 분위기라 개성이 넘치는 점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 가지의 아뮤즈부쉬, 따뜻한 빵과 직접 만든 수제 버터, 연어알이 들어간 감자 수프, 무화과와 비트, 고등어가 들어간 전채, 소고기 볼살 요리, 석류 아이스크림 디저트와 초콜릿까지. 눈이 즐겁고 위가 즐거운 배부른 식사를 했다.
있는 동안 날이 제일 좋고 그만큼 가장 더운 날이었다. 입고 있던 트렌치 코트를 벗어 팔에 걸치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에펠탑까지 걸었다. 늘 그렇듯 여행을 아쉽게 하는 건 떠나는 날 맞이하는 완벽한 날씨다.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낮의 에펠탑을 바라보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풍경을 눈에 담았다.
오페라 역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트로카데로 광장 근처에서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이 더위에도 에어컨을 안 틀어주는구나, 덥다 하며 가는데 생라자르 역쯤에 도착할 즈음 기사 분이 불어로 어떤 설명을 했고, 그러자 몇몇 승객이 내리고 몇몇 승객은 그대로 남았다. 무슨 설명이었지? 그래도 오페라 역까지는 두 세 정거장 밖에 안남았으니 괜찮을거야 하고 가는데 갑자기 오페라 가르니에를 지나치더니 그대로 정류장을 무정차하며 마레지구까지 질주를 했다.
그제야 아차, 싶어 기사 분께 다가가 상황을 물었더니 생드니로 간다고 알려주지 않았냔다. “불어를 못해 몰랐어요. 사실 우리 오페라에서 내렸어야 해요” 하니 운전대를 잡은 채로 좀 생각하더니 그럼 8호선을 타면 되겠냐며 조금만 기다려보란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가더니 버스를 멈추고 앞문을 열어주며 여기 앞 지하철 출입구로 바로 내려가면 8호선을 탈 수 있다고, 목적지까지 잘 가라고 인사를 해줬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엄마를 챙겨 내렸다. 덕분에 파리에서 미아 안 되고 엄마 앞에서 멋지게 해결사까지 된 뒤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가 파리 사람 불친절하다고 했나. 파리는 언제나 내게 이런 모습이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이 아주 헬이라며, 택시로 2시간까지 걸렸다는 말이 있어 이르게 출발했다. 공항으로 빠지는 순환도로의 초입이 어찌나 막히던지. 차선이 소용이 없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이 무질서 속에 운전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설픈 영어로 이렇게 200m만 가면 길이 풀리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기사 분에게 엄지를 척. 막히지 않으면 40분 내외로 도달할 수 있는 공항인데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라면 파리 도심에서 공항으로 갈 때 RER를 타거나 아니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출발하시기를.
수화물을 보내는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이 났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출발 시간이 한 시간 지연이 됐다. 왜 지연이 되는지 확인하고, 도착지에서 타야 할 버스에 늦을까 걱정하며 웅성웅성대는 걸 보니 한국행 비행기가 확실하구나. 면세가로 저렴한 샴페인을 구입했고, 커피 한 잔을 한 뒤 탑승을 완료했다.
한국의 효율적인 빠름을 통해 금방 짐을 찾아 주차된 차에 도착했다. 오후 다섯시 반. 이제 다시 네 시간 가까이 운전하면 집에 도착한다. 공항 터미널을 빠져 나와 인천대교를 건너는 순간,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잔잔하게 파도 치는 서해 위로 작게 보이는 비행기도 그림같다. 한국에 여행으로 도착해 공항 버스를 막 타고 나오는 여행객이 이 풍경을 맞이하면 어떨까. 아마 영원으로 남을 색감이 되겠지.
여행 잘 다녀왔다고 남동생과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던 엄마가 내가 옆에 듣고 있다는 걸 무심코 잊었나보다.
“밥이랑은 맛있었어? 누나 성격상 웬만한 곳은 안 갔을 것 같은데?"
“음식이 다 찔끔찔끔 나와서 배가 하나도 안 차더라. 기내식으로 먹은 비빔밥이 제일 양에 찼어.”
“엄마, 배부른 음식보다 배고픈 음식이 더 비싸고 몸에 좋은거야”
남동생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구나, 가 감상의 전부였다. 엄마의 말에 화가 나지 않았다.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싶었다. 배가 차지 않았다고 나한테 말할 수 없었을, 배가 고픈데 뭘 좀 더 먹어도 되겠냐고 하지 못했던 엄마 나름의 고충을 생각했다. 혼자서 뭘 할 수 없는 낯선 상황에서 유일한 의지일 딸의 눈치가 먼저였을 엄마에 대해. 아주 뒤늦게.
엄마를 무척 위한 척 했지만 사실 이번 일정 동안 내가 평소 파리를 여행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다녔다.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골목 걷고, 식사만큼은 비용을 투자해 잘 챙겨먹고, 부지런히 사진 찍으며. 많은 걸 포기한 척 했지만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고 이해만 바랐다는 걸 이제야 솔직히 인정한다. 엄마가 동행인일 때 발현되는 이기심.
장녀들이 으레 갖는 엄마를 향한 부채 의식으로 명절 연휴에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을 벌써 여럿 진행했는데 취기의 호기가 더해져 그 범위를 유럽까지 넓혔다. 엄마 모시고 다녀온 효녀 메달 획득 이상의 것들이 우리 사이에 남았기를. 그랬다면 이 여행은 성공일테니까. 영원히 서로를 완벽하게 모를 모녀에게 한 가지 공통 경험이 추가 됐다.
중간에 휴게소 한 번 들르고 부지런히 달려 돌아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를 먼저 내려주고 집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풀기 전에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셨다.
그 모든 감상에도 불구하고. 일단 다음 파리는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