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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r 19. 2019

17. 우린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라서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17

             

         

 세계 주요 도시 스타디움 투어를 예정하고 있는, 이제는 월드 와이드 슈퍼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에게도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다. 데뷔를 할 수 있을까 무섭고, 잘 될 수 있을까 두려웠던 그런 시기. 대기하다 잘리기도 부지기수, 누군가의 땜빵이라도 고마웠던 그런 시기. 처음부터 바로 성공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까지 본인들의 노력으로 천천히 올라왔다는 서사는 탈덕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애들 여기까지 어떻게 노력해 왔는데’ 하고. 지금의 열매를 더 오래, 더 많이 맛볼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누구보다 성공한 가수가 된 방탄소년단의 지금은 어떨까. 안온하게 행복할까.     


 불안이란 감정은 마치 액체 괴물 같다. 어떤 악력이 가해지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양을 만들어낸다 해도 본질은 그대로다. 코어를 죽이지 않은 이상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은 모양새랄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멤버들의 어딘가에 붙어-인지하지 못한 새에-행복해서 무서울 수 있고 잘 되어서 두려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하기도 했을 거고, 끝없는 외로움과 제약 없는 사랑을 느꼈다가 궁극에는 다시 무섭고 두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확신하냐고?


 우린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그들도 인간이니까.     


 그런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방탄소년단의 고민은 그들이 쓴 가사에 자주 묻어나 있다. 나는 이게 참 좋다. 현실적이라서. 잘난 척하지 않고 완벽한 척하지 않고 대단한 척하지 않는, 너무나 방탄소년단스러운 모습이라서.


 아래에서부터 차근히 올라간 가수로서, 꿈과 미래에 대한 고민 많은 청년으로서, 지금을 지나고 있는 평범한 어떤 한 사람으로서, 철학으로서, 그 자신으로서 열심히 불안해하고 고민하고 사색하고 고통받으며 나름의 답을 선사하고 있다. 그중 이제는 완벽하게 내 문장이 되어버린 몇 곡을 꼽아 봤다.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완전할 수 없어 무던히 노력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방탄소년단 노래는 불완전한 내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무한히.     



 1] Born Singer     


  데뷔 전후의 차이점 아이돌과 래퍼 사이 경계에 살아도 여전히 내 공책엔 라임이 차 있어.

  대기실과 무대 사이에선 펜을 들고 가사를 써. 이런 내가 너희들 눈에는 뭐가 달라졌어?

  난 여전해 내가 변했다고? 가서 전해 변함없이 본질을 지켜 I'm Still Rapperman.

  3년 전과 다름없이 랩 하고 노래해.     


  I'm a Born Singer 좀 늦어버린 고백 I Swear.

  언제나 멀기만 했었던 신기루가 눈앞에 있어.

  I'm a Born Singer 어쩌면 이른 고백 그래도 너무 행복해 I'm Good.


 방탄소년단 정식 데뷔 후 약 한 달 후인 2013년 7월. 가격을 지불하고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플랫폼이 아닌, 무료 전파가 가능한 사운드 클라우드에 방탄소년단의 새 음원이 업로드됐다.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가수가 된 이후, 그러니까 음반을 발매하고 음악 방송에 서고 환호하는 팬들을 만난 지 한 달 차에 공개한 노래의 제목은 <Born Singer>.     

 

 무대는, 방송은, 생활은 그들의 예상대로였을까. 가수가 되면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것들이 그들에게 다가왔을까.     


 남준, 호석, 윤기 세 명의 랩 라인 멤버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현재를 노래하면 보컬 라인인 나머지 멤버들이 같은 가사의 후렴을 부르는 이 노래에서 멤버들은 얘기한다. 무대도 방송도 생활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다만 프로 가수가 된 현재의 행복을 과시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자기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상념은 데뷔를 한 이후에 곱씹자니 좀 늦은 것도 같고, 이제 데뷔 한 달 차이니 이른 것도 같지만, 각오만큼은 모두 비슷했다. 잡힐 듯한 신기루가 눈앞에 있으니 좀 더 노력하자고. 예전과 달라진 건 혹은 달라질 건 없으니 지금처럼만 하자고.     


 신기루만 보고 달려가기엔 녹록지 않은 상황들이 많았다는 걸 알기에 지금 이 노랠 들으면 울컥하는 순간이 있다. 이때 방탄소년단은 대형 기획사에 밀리고, 음악과 힙합에 대한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고, 크게 성공하지 못할 거란 때 이른 단언까지 그들을 향한 부정(否定)들을 지뢰처럼 안고 있었다.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 좌절들로 터졌을 시간을 묵묵하게 이겨내 지금을 만들었다.      


 그런 지금에서 물어보면 어떨까. 돌아보니 어떤 것 같냐고, 지금의 무대와 방송과 생활은 어떤 것 같냐고.     


 ‘어때? 지금은 행복한 것 같아?’      



 2] 바다


  바달 갖고 싶어 널 온통 들이켰어. 근데 그 전보다 더 목이 말라.

  내가 닿은 이곳이 진정 바다인가 아니면 푸른 사막인가.     


  결국 신기룬 잡히고 현실이 됐고 두렵던 사막은 우리의 피 땀 눈물로 채워 바다가 됐어.

  근데 이 행복들 사이에 이 두려움들은 뭘까.

  원래 이곳은 사막이란 걸 우린 너무 잘 알아.

  울고 싶지 않아 쉬고 싶지 않아 아니 조금만 쉬면 어때.

  아니 아니 아니 지고 싶지 않아 원래 사막이잖아.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시련이 있네.   

       

 ‘글쎄, 이 두려움은 뭐지?’


 질문에 그들은 대답했다. 역시 아직 모르겠다고.     


 <피 땀 눈물>과 <불타오르네>로 2016년 대상을 거머쥔 후 2017년 초 <봄날>과 <Not Today>까지 성공시킨 방탄소년단의 다음 앨범에 모든 이의 눈과 귀가 쏠렸다. 윙즈 해외 투어를 성공리에 진행 중이었고,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탑 소셜 아티스트상까지 받은 후였다. 2017년 9월. 방탄소년단은 타이틀곡 <DNA>를 담은 앨범 <love yourself 承 Her>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바야흐로 방탄소년단의 비상이었다.     


 성공에 도취하여도, 좀 건방져져도 ‘그럴 수 있지’ 할 수 있었던 그때, <love yourself 承 Her>에는 노래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음원 사이트에선 들을 수 없는, 앨범을 구입해야만 들을 수 있는 노래. 우리 앨범을 구입한 사람들에게만 솔직히 내보이는 시련. <바다>다.     


 끝이 없던 사막에서 살아남기를 빌었던 어린 소년들. 손 뻗으면 닿을 듯 희뿌옇게 있던 신기루는 실재했다. 영향력은 커졌고 이제는 우리 노래를 기다리며 찾아 듣는 가수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동화 속 나라처럼 모두가 행복하고 달콤하고 웃음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더 노력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될 것 같다. 물을 들이켤수록 갈증이 인다. 다른 불안이 찾아왔다.     

 

 우린 절망해야 해 그 모든 시련을 위해     


 아프고 건조한 가사를 접하며 생각했다. 불안의 불씨가 존재하는 이상 방탄소년단은 훨훨 날아갈 거라고. 남준이 했던 말처럼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서 이 성취가 계속될 거라고.  

    

 그저 그 불안과 절망과 시련이 적당하길.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절망하고 적당히 시련해서 그들 카타르시스의 원천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3] Airplane pt.2     


  세상 어딜 가도 호텔 방서 작업

  하루는 너무 잘 돼 그다음 날은 망해

  오늘은 뭐로 살지 김남준 아님 RM

  스물다섯 잘 사는 법은 아직도 모르겠어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그냥 go    

      

 불쑥 솟아나는 불안들을 잠재우는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 늘 해오던 방식으로, 그냥 계속하는 것 말곤. ‘Born Singer’의 본질을 얘기했던 것처럼 그저 무던히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밖에 없다.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꾸준함 속에 답이 있을 거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내 삶의 방식으로서 음악을 하고 있어야만 한다. 더 나은 작업물과 더 나은 무대, 더 나은 오늘의 나로서 새로운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그 부담을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할 뿐이다. 해왔던 것들을.     



4] 땡 / BTS Cypher 4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여지껏 무시해줘 고맙다

  덕분에 스타디움 돔 빌보드 많은 것을, 덕분에 많이도 얻었다.

  작은 회사 친구들아 너네가 곧 대기업이 되길

  우린 앞으로 바람대로 또 망할테니 계속 걱정해주길 (땡)     


  이젠 니가 안 미워

  이젠 니가 안 미워 sorry bae

  북이 돼 줄게 그냥 세게 치고 말어

  그래 해보자 사물놀이 bae (BTS Cypher 4)          


 2018년은 방탄소년단에게 어떤 해였을까. 빌보드 200 앨범 차트 1위, <TIME>지 메인 장식, UN 연설, 최고 음반 판매량 기록 등 그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돈데, 이 모든 성과를 직접 이뤄낸 멤버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연히 그해의 연말 시상식엔 방탄소년단이 자주 호명됐고, 음반 대상이며 인기상 등 한 시상식에 중복으로 수상하면서도 매번 감사함을 잃지 않았다.      


 2018년 말, 한 지상파 방송사의 연말 공연에서 방탄소년단은 1부, 2부에 나누어져 한 곡씩 두 곡을 불렀다. 한 대형 기획사 출신 가수의 노래를 방탄소년단을 포함한 전체 출연진들이 모여 부르며 마무리한 방송이었다. 그해에 가장 큰 활약을 펼친 가수들이 아닌, 인기 있는 여러 그룹이 소속된 대형 기획사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었다. 방탄소년단이 1부에 부른 노래는 <MIC Drop>. 이례적으로 2017년에 발표한 노래를 불렀다. <MIC Drop>은 헤이러들(Haters)을 향해 이젠 볼 일 없고 할 말 없으니 마지막 인사하겠다던 가사의 노래다.


 헤이러들(Haters)이 걱정해준 덕분일까. 빽이 없는 중소 아이돌로 회사가 작아서 성공 못 할 거란 말 덕분일까. 방탄소년단은 눈부시게 성공했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헤이러들(Haters)을 향해 말한다. 앞으로 계속 걱정해줘도 상관없다고, 그 정도 말은 이제 신경도 안 쓰인다고.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무뎌져야 했을까. 그리고 과연 이 악물고 버티게 했을 헤이러들(Haters)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울 수 있을까.      


 아픔은 가셔도, 흉터는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흉터는 동력이나 오기와 결부되면 보다 창조적으로, 불안과 시기로 결부되면 보다 파괴적으로 발현될 것이다. 역시 다만 모든 것이 적당하기를, 적당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5] Magic Shop          


  내가 뭐랬어 이길 거랬잖아. 믿지 못했어.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이 기적 아닌 기적을 우리가 만든 걸까.

  No 난 여기 있었고 네가 내게 다가와 준 거야.   

  

  넌 절벽 끝에 서 있던 내 마지막 이유야.    

 

  항상 최고가 되고 싶어. 그래서 조급했고 늘 초조했어.

  남들과 비교는 일상이 돼버렸고 무기였던 내 욕심은 되려 날 옥죄고 또 목줄이 됐어.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었던 나 그대의 슬픔 아픔 거둬가고 싶어 나.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웠던 우리도, 성공의 무게가 버거웠던 우리도, 헤이러들(Haters)에게 상처 받고 또 극복해가는 우리도 그 자체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우리의 행복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숫자로 존재한다는 걸 안다. 이 사람들을 위해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다.     


 노래의 존재 가치는 듣는 사람에 의해 매겨진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주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존중해주고 어떨 땐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나서 주는 팬들이 있다. 행복해질 의무, 그런 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실행해야 할 것 같다.      


 ‘어때? 지금은 행복한 것 같아?’

 ‘글쎄, 이 두려움은 뭐지?’     

 ‘두려워?’

 ‘여전히 두렵지. 그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우린 작은 파동에도 휩쓸릴 수 있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이제 이 불완전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한다. 우린 불완전했기에 너희와 만날 수 있었다. 완전하지 않음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P.S     


 그리고 이 모든 해석은 한낱 덕후의 궁예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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